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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2) 우리 시대 착한 사마리아인

예수님 눈으로 세상 모든 일 볼 수 있어야/ 이 땅의 어떤 제도들도 완전할 수 없어/ 주님 나라 정신에 부합할 대안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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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경제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라는 의미 외에도 한국 사회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좌우하는 중요한 가늠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만년이라는 역사 동안 한반도에서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되어온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전통 안에 녹아있는 가치관이 외부와의 관계성 속에서 재정립되는 시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미 FTA는 미국, 나아가 국제사회 안에서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한 번 발효되면 두 번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한·미 FTA는 법으로서의 규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 각자의 양심이나 판단력을 점진적으로 무력화하거나 마비시켜 새롭게 도입되는 가치체계와 정치경제체제를 영속화시킬 위험성마저 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FTA로 인해 밀려들어오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체계에 영향을 받게 되고 그 체계에 따라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루아침에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이로 인한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해결책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마르 4,26-29)

우리는 마르코복음에 등장하는 ‘하느님 나라’의 관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FTA 등으로 인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으로 인해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인해 완성될 나라이기에 오늘의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이 땅의 제도들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제도도 완전할 수 없고 부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인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좀 더 선하고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제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써 왔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제도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완전하다고 여기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할 때 빚어졌던 슬픔과 고통이 인류 역사 안에는 적잖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에서 “종살이의 멍에를 메고 있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 주인을 크게 존경해야 할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1티모 6,1)라고 말합니다. 언뜻 보면 바오로 사도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동물이 메는 ‘멍에’라고 말함으로써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불완전한 사회제도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완전한 상태에 있고,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제도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멍에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에 따라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에 마땅한 대가를 치르면서 하느님의 가치가 세상 안에 싹을 틔우고 뿌리내려 가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당장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한계와 부조리를 직시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정신에 부합하는 대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참된 이웃, 형제가 되어주는 길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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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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