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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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41) 소비자이자 투자자인 그리스도인

세계 경제 시장 긴장시킨 ‘노라 내시’ 수녀/ 1974년 ‘기업사회책임위원회’ 만들어/ 환경오염·저임금 노동자 등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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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행위를 영위하려는 소비자들이 윤리적 소비 등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정신을 선택함으로써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건전하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모으다시피한 전 재산을 사회와 공익재단에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의 육체적 건강을 돌보기 위해 재충전을 하거나 쉬어야 할 시간에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돈을 벌어야 할 때 돈과는 무관한 듯 보이는 이웃을 위한 일에 나서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윤리적이고 영성적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변화된 삶의 태도가 확장, 발전해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약한 개별 존재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도전이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대안적 행동들로 변화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부활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활체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60대 후반의 한 여성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찾았습니다. 임원 3명이 나와 정중히 그를 맞이했습니다. 이 여성은 골드만삭스 측에 과도한 임원 연봉 제한, 경영 투명성 제고, 취약계층 지원 등 세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일반인 평균 연봉을 3시간에 벌어들이는 최고경영자들의 고액연봉은 부도덕하며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초국적기업의 임원들을 긴장하게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노라 내시 수녀였습니다.

내시 수녀가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제활동의 부산물인 환경오염과 노동자들의 저임금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오던 그는 투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다짐하며 수녀들의 퇴직금을 종자돈으로 ‘기업사회책임위원회’를 만들고 주식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에는 ‘기업책임 실현을 위한 종교간 센터(the Interfaith Center on Corporate Responsibility: ICCR)’에 가입하기에 이릅니다. ICCR은 그리스도교 교리를 기반으로 투자를 통해 행동에 나서는 단체로 운용하는 기금 규모가 1000억 달러에 달합니다.

내시 수녀는 문제가 되는 회사를 선정해 주주총회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이 발생했습니다. 수녀회에서 임원진 면담을 요구할 때 해당 기업이 거부하면 그 파장은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내시 수녀는 1981년 세계적 다국적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 주주총회에 참석해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당시 GE 최고경영자 잭 웰치 회장은 내시 수녀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그를 만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직접 수녀원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군수업체로 꼽히는 록히드 마틴 CEO 로버트 스티븐스와 메이저 석유회사인 BP 칼 헨릭 스반베리 회장은 회사 경영에서 내시 수녀의 의견을 항상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다양한 회사의 경영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맥도날드에는 소아비만 대책을,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인 엑슨 모빌에는 석유 채굴로 지반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세계 최대 유통회사인 월마트에는 매장에서 성인 비디오게임을 철수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수도회가 조용히 펼쳐온 주주 권리운동은 미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심으며 기업들의 실질적 변화는 물론이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수녀들의 퇴직금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수도자들의 선택은 세상 속에 서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속이 던져주는 도전들에 어떻게 응전해 나갈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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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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