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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의 들보] 솔직한 고백은 교회 개혁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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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문화권인 유럽에서 지난 수십 년간 신자 수의 꾸준한 감소는 세속화와 문화적 변화, 피임과 낙태, 동성 결혼, 교회 내 여성의 역할 등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현대 사회 가치 사이의 논쟁에서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무엇보다 가톨릭교회 성직자의 성적 학대와 관련된 스캔들의 영향이 컸다. 이러한 스캔들은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즉각적인 충격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인식과 신뢰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교회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지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주교회의가 의뢰해서 진행한 성학대 실태조사 보고서가 발표됐을 때, 해당 국가의 가톨릭 주교회의는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개혁의 수위를 놓고 교황청과 갈등을 빚어 논란이 됐던 독일 가톨릭교회 ‘시노드의 길’도 2018년 발표된 보고서가 그 출발점이었다.

한국천주교회도 ‘미투운동’이 활발했던 2018년, 성직자의 성적인 남용을 고발하는 증언이 보도되면서 해당 교구에서 주교들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한 바 있다. 주교회의 차원에서도 대국민사과 기자회견과 함께 사제 성평등 교육, 대책위원회 설립, 미투 신고전화 운영 등 후속 조치들이 시행됐으나 6년이 지나도록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유럽교회의 성학대 보고서는 피해자 개별 사례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도 중요하지만, 가톨릭교회 차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제때 고백하고 조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성찰 과정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외부 기관에 의한 성학대 실태조사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가톨릭 성학대 보고서를 발표한 국가의 가톨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는 곧바로 교회 출석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많은 교구가 학대 피해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정도로 교회의 재정적인 부담도 상당했다. 어떤 경우에는 교구가 파산을 선언하기도 했다. 보고서 발표 이후 신자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국가는 교회에 더 큰 투명성과 책임성, 평신도의 교회 운영 참여를 포함한 교회 내 중요한 개혁을 촉구했다.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는 교회가 아니라, 상처 주는 교회의 모습을 고백하는 일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성학대 보고서를 통해 이 부끄러운 교회의 모습을 고백한 이유는 이러한 솔직한 고백에서부터 교회 개혁은 첫걸음을 제대로 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1차 본회의 종합보고서의 20가지 주제 가운데 9번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여성’ 항목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현실에 놓인 교회의 부끄러운 고백을 담고 있다. “많은 여성이 사제들과 주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현하였지만, 상처를 주는 교회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성직주의,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권위의 부적절한 사용은 계속해서 교회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친교를 손상시킨다. … 성적인 남용, 권력과 경제적 남용은 계속해서 정의와 치유, 화해를 요청한다. … 교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서 존엄성과 정의가 손상될 때,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선포하는 신뢰성이 약화된다. 시노드 과정은 관계들의 쇄신과 구조적 변화들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교구단계의 경청과정에서 서구 교회와 달리 한국교회 여성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여성들과의 시노달리타스가 잘 구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한 목소리를 낼 여성들이 이제 교회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너무 늦기 전에 교회가 먼저 여성을 포함한 하느님 백성, 시민사회에 상처 주었던 교회의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어떨까?
경동현 안드레아(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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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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