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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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가난한 이웃의 행복한 삶에서 만나는 예수 / 강성숙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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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파야타스(Payatas)는 쓰레기 산이라 불린다. 마닐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지로 1995년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 쓰레기 매립지에 이어서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형성됐다. 이후 스모키 마운틴은 점차 폐쇄됐다. 이 두 쓰레기 매립지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가난의 상징이 됐고, 쓰레기는 모두 파야타스로 버려지면서 거대한 쓰레기 산이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매일 이 쓰레기 산에서 쓰레기를 주워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밥을 먹고 걸을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든 노인이든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모두 쓰레기 산으로 출동해 쓰레기를 줍는다. 아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든다. 이렇게 온 가족이 쓰레기를 주워 팔면 하루 한화 4000~5000원을 벌어 평균 6~7명의 가족들이 하루를 살아간다. 짐작건대 아이들의 영양실조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몇 해 전 복지관 직원들과 파야타스에서 현장 체험을 했다. 가족들과 쓰레기를 줍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들과 생활 체험을 했다. 우리는 모두 홈스테이처럼 1인 1가족에게 초대받아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먹을 것은 부족하고, 씻을 물도 넉넉하지 않았다. 잠자리는 더더욱 그러했다. 9가족이 모여 사는 이 가족에겐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산에서 주워 수리한 초라한 침대(할머니를 위한) 하나와 비닐 깔개가 전부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정말 놀라운 것은 가족들의 꾸밈없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손님을 맞이하는 행복한 웃음소리였다. 하루 종일 쓰레기를 뒤지느라 온몸에 먼지를 덮어쓰고 물이 부족하니 잘 씻지 못한 땀으로 얼룩진 손과 얼굴이었지만, 그 손을 내밀어 환영해 주는 가족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는 그 순간 세상 것을 다 얻은 듯이 무지갯빛 행복을 느끼게 해줬다. 구멍 뚫린 티셔츠를 입고 구멍 난 조리를 신고 배고픈 것도 잊을 만큼 아이들과 가족들은 하하 호호, 까르륵 까르륵~ 떠나지 않는 그 웃음소리로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주는 현존하는 행복을 알게 해줬다.

다음날, 지붕만 가려진(현재는 많이 좋아진 상태) 성당의 미사 시간은 그야말로 ‘즐겁게 노는 어린이처럼’이란 성가가 절로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로 가득 채운 미사 시간, 신부님의 질문에 “저요, 저요”를 외치는 아이들의 신명나는 참여의 소리, 아이들의 쉼 없는 목소리의 질주로 박자, 음정은 서로 달라도 마음껏 소리 내어 부르는 성가, 그 소리는 마치 은방울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축복의 소리로 들렸다. 예수님을 만났다. 가난한 이 어린아이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났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은 마음, 어쩌면 다 가졌을 마음, 그러나 우리는 욕심의 십분의 일도 채우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행복이 다소곳하게 옆에 와 있어도 느끼지 못하고 행복을 갈구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파야타스의 어린이들이, 행복은 많이 가지고 많이 배웠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 그대가 행복한 사람임을 일깨워 주는 순간의 찰나를 내게 선물로 줬다. 비로소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행복을 알아보게 됐다. 자신의 속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언제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게 할 수 있을까? 아직 큰 숙제로 남아있다.

생각난 김에 회의 차 필리핀에 가게 되는 날, 내게 행복은 어디서 오고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아이들을 보러 갈 계획을 세워야겠다. 그때 만났던 그 아이들은 아닐 테지만….
강성숙 레지나 수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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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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