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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착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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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가능동의 주택가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이 있다. 이주민과 난민들이 노동을 통해 생활비를 벌고 새 출발의 발판을 마련하는 작업장이다. 수단, 이집트, 우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온 여덟 명이 양질의 밀랍초와 아로마초를 만든다. 초 주문이 많지 않은 요즘은 청과 잼, 천연비누도 만들고 있다. 노동 허가도 일자리도 얻기 어려운 난민들에게 이곳은 일터이자 삶을 나누는 공동체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월세가 싼 이 동네에 산다. 수단에서 온 자키와 유시프, 이집트 사람 무하메드는 무슬림이다. 이 젊은이들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재신청을 하고 심사를 기다리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오기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겼고 삶이 여전히 불안정한 탓에 건강도 좋지 않다. 그래도 여기서 일을 할 수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인보 성체 수녀회의 김보현 수녀와 진은희 수녀는 초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이들에게 전수했다. 작업장 바로 앞집에서 주민으로 사는 두 수도자는 골목에서 만나면 영락없는 동네 아줌마다.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난민들이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려 애쓴다. 가난하고 약한 이의 삶을 체험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보고 나서 이 일을 시작한 두 수녀는 같은 눈높이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수도복을 입지 않아 무시당할 때도 있지만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고 그들과 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2014년 1월부터 2023년(5월 말 기준)까지 10년 동안 한국에 온 난민 신청자는 8만5105명이다. 그중 난민 심사 완료자는 절반을 조금 넘는 4만7897명, 난민 지위를 인정한 것은 987명뿐이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2.1로, 세계 평균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한국인들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수백만이 난민 생활을 했던 나라이지만 그 기억이 다 사라져서일까? 이곳에서 난민들이 당하는 소외와 냉대는 적지 않다.

의정부에 살면서 주말에 인천과 안산까지 가서 친구들을 만나는 난민 청년들은 고향 음식을 해 먹을 때 제일 즐겁다. 유시프는 일주일 전부터 수단의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이 크다. 나는 꽃피는 봄에 이 친구들과 함께 걸을 계획을 세웠다. ‘이음새’ 회원들과 이들의 얘기를 들으려 한다.

지난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은 초 판매 수익을 다른 난민 지원 단체에 장학금과 후원금으로 보냈다. 초를 만들며 내면의 빛을 찾아 밝히는 이 난민들이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고 있다. 그 선함이 아로마 향처럼 기분 좋게 한다.
신한열 프란치스코 (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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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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