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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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갑진년(甲辰年) 기억’ / 황종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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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올해는 갑진년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다섯 번째 갑진년을 맞았다. 240년 전 1784년에 맞은 첫 갑진년 봄에 한국교회가 이 땅에서 탄생했다. 이벽(요한 세례자)의 권고로 이승훈(베드로)이 베이징 교회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 선교사들에게 선물받은 서학서들과 성물들의 일부를 먼저 이벽과 공유했다. 이벽은 서학서들을 정교하게 연구한 후에 다시 이승훈과 정약전과 정약용 등을 만나서 복음을 토론하며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최창현(요한)과 최인길(마티아), 김종교(프란치스코),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이 세례를 받도록 매개했다. 이 위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일들이 발생한 해가 240년 전 갑진년이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도록 바닥이 되어주면서 이벽은 말했다.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그는 또 말했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상」 308쪽) 이벽은 ‘복음’,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말했는데, 당시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여서 산다는 것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이벽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때, 이 소식을 접한 사대부들은 이것이 당대 조선의 신앙 관습과 사회 질서를 ‘밑뿌리부터 뒤집어엎는 것임’을 직감하고, 이벽이 다시 유교의 도리로 돌아오게 하려 했다.

이 일을 떠맡은 인물로 이가환이 있었다. 그는 이익의 실학을 정통으로 잇는 학자이자 형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이익의 종손이기도 했고, 이승훈은 그에게 생질이었다. 그가 이벽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가서 토론을 벌였다. 사흘에 걸쳐 토론을 했어도 이벽을 설득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가 천주교의 새로운 가르침에 설득됐다. 하지만 이가환은 하느님 안에서가 아니라, 이것과 분리된 당대 사회 패러다임 속에서 살면서 이 가르침을 공적으로 받아들일 뜻이 없었다. 그는 떠나면서 말했다. “이 도리는 훌륭하고 참되다. 그러나 이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갖다 줄 것이다.”(309쪽)

이가환은 옳았다. 한 세기 동안은. 그러나 이벽은 그 자신이 바로 저 불행의 난국에서 죽음을 맞은 한 희생양이었으나, 영원에 이르기까지 옳았다. 이 갑진년에 그의 값진 복음 선포를 기억한다. 눈물로.

복음이 무엇인가? 마르코가 전한 예수님의 첫 선포는 이렇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γγικεν ? βασιλε?α το? θεο?. μετανοε?τε κα? πιστε?ετε ?ν τ? ε?αγγελ??)”(마르 1,15) 미국 가톨릭교회가 공유하는 영어 성경은 ?γγικεν의 원뜻에 따라 앞부분을 “하느님의 나라가 손안에(at hand) 있다”고 번역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 손안에’ 있든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 안에 있고,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고 어머니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 안에서 그분의 딸과 아들로 존재한다는 것. 이 복된 소식을 존재로 맞아들여서, 곧 ‘아버지를 찾은 아들’이 기쁨으로 차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 이벽을 상상해 보라. 이 기쁨으로 저 ‘복음’, 저 ‘기쁜 소식’이 이 땅에 뿌리 내리도록 자기의 목숨을 내준 믿음의 선조 이벽을 이 갑진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준 ‘방주의 창’이 참으로 고맙다.

갑진년에 값진 이벽을 만나면서 올라오는 물음을 공유하며 첫 나눔을 마치고 싶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 안에서 사는가? 그분의 자녀로?”



※황종열 교수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가톨릭꽃동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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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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