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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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평화칼럼] 주님을 위한 일상

이상근 마태오(미국 테네시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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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출근 전에 문득 미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면서 성당에 들르기는 쉽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릿속은 직장에서 일어날 일들로 가득하고 입맛이 없어 식사도 거른다. 이런 와중에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려면 큰 의지가 필요하다. 아니,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못 할 일이다.

미사 시간을 확인하고 오전 8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몇 년 만에 스스로 평일 미사에 가는 것이라 마음이 꽤 설렜다.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내가 평일 미사까지 간다니, 이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성당에 들어서려 했는데, 이런, 성당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야심차게 무언가를 해보려 했는데 허탕을 치고 나니 다음에 평일 미사에 참여하러 오기는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고 계셨다.

그분께 여쭙자 말씀하시기를 아이들 방학일 때에는 오전 7시 미사만 있고, 8시 미사는 없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돌아서려는데, 그분이 성당 문을 열어줄 테니 기도하고 가겠느냐고 하셨다. 아마도 성당에 자주 오시는 분이셔서 비밀번호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얼떨결에 성당에 따라 들어갔다.

불이 꺼진 큰 성당에 걸어 들어가는데 왠지 모를 경외심이 들었다. 텅 비어 있는 커다란 성당에 나 혼자만 앉아 있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뜻밖의 성체조배를 하게 된 나는 성당 맨 앞줄 십자가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너무 조용해서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묵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묵주 기도와는 달리 좀 더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기분이었다.

성당에서 나와 돌아가려는데 문을 열어주셨던 할머니가 밖에 계셔서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께서는 5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셨고, 성당에서 기도하면서 많은 치유를 받으셨다면서 아침 미사의 아름다움을 꼭 체험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다음에 성당에 들어갈 수 있게 비밀번호를 알려주셨고, 성체조배할 수 있는 성체조배실 위치도 알려주셨다. 내가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며 느꼈던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당연한 것이라며 웃으셨다. 그제야 내가 느낀 기분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묘한 아침이었다. 미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하느님과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미사를 보고 홀연히 떠난 것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며칠 지나 다시 한 번 평일 미사에 참여하러 갔다. 한 차례 허탕을 치고 집에도 유난을 떨면서 으쓱대는 기분으로 나왔던 나인데, 정작 미사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와있었고,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나처럼 어쩌다 한 번 오는 게 아니라 매일 이곳에 오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스스로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뗀 것이 머쓱해졌다. 이날은 이렇게 미사에 참여하고 예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이 사람들처럼 일상이 될 수 있길, 특별한 일이 아니길 청하면서 미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매일 평일 미사에 참여하면서 이제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만, 여전히 나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출근하기 바쁘고 나의 일상을 살면서 주님을 잊고는 한다.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그날들의 기억이 내 마음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고 아직도 문득 문득 이렇게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의 큰 은총이다. “나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일상이 되길 도와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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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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