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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종교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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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정(소설가·전 부산평협 회장)

한국은 이승만 정권 이후 오랜 독재정권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묵시적 억압이 있었다. 종교인은 열심히 기도하고 종교 활동만 해야지, 그 어떤 사회활동 내지 현실 참여적 발언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억압의 이면에는 우리 종교계의 일부 지도층이 정권과 밀착한 나머지 항상 독재자를 옹호하고 대변하면서 종교마저도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자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부 친일파가 종교를 팔고,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여 출세하고 치부했던 것과 같았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종교인이 사회의 그 어떤 일에도 눈을 감고 순수한 종교 활동, 즉 기도하면서 전교활동이나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왜냐하면 종교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은 사회 안에서만 생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람이나 사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를 믿는다고 사회의 그 어떤 일에도 눈감고 귀를 막아야 한다니! 만약 종교가 사회와 분리되어 있다면 이것은 진정한 종교일 수 없다. 종교는 종교이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교를 두고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일상생활 자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 가르치는 바에 의해 우리의 생활을 하루하루 하느님의 뜻과 정의에 맞도록 정화해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혼탁한 이 세상의 정화나 생명의 고귀함을 되새겨 이를 지키고 선양하려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정의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이나 세력이나 대해서는 침묵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저항해야 한다. 이를 회피한다면 비겁한 신앙인이다.

가톨릭의 경우, 신앙인의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 문제는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크게 제기된 문제다. 그러나 이 시대 대부분의 평신도는 바티칸 공의회가 제기하고 가르치는 바를 너무 모르고 있다. 신앙인은 사회야 죽이 끓든 밥이 끓든 관계하지 말고 오직 미사에만 참례하면서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 같은 용기 있는 참신앙인이 일제에 의해 그 진면목이 왜곡되고 감추어져 오다가 광복이 된 후에도 오랜 세월 그 진가를 평가하지 않은 일도 정신 바로 차린 신앙인이 교회 안에 부족했던 데 기인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하느님의 법에 위배되고 그 정의에 벗어날 때 이에 맞서 과감히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톨릭신앙인의 현실 참여요 발언이고, 이 참여와 발언이 종교인의 사회적 역할이고 책임이다.

그런데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이러한 정당한 발언과 행동마저 억압하면서 종교인은 전교하고 기도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전교는 왜 해야 하며, 기도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시대가 바뀐 지금도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얽매인 신자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종교계의 또 하나의 비극이요 수치다.

종교인들의 가장 큰 약점은 사회적 책임에 둔감한 것이다. 눈이 있어 보고, 귀가 있어 듣는다면 누가 봐도 사리에 어긋난 일에 대해서는 소신껏 말해야 하는데도 종교인이기 때문에 입을 닫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무슨 미덕으로 여겨 왔다. 오늘날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이유도 우리 전체 종교인들이 권력 앞에 비굴하고, 물질적 부와 쾌락 앞에 쉽게 허물어지면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종교는 그만 두고 우리 그리스도교만 두고 말해도, 예수님께서는 항상 소외계층 쪽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쏟으셨다. 그런데도 오늘날 일부 종교인들, 특히 지도계층의 인사들은 예수님의 생각과 삶과는 너무 먼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종교란 이름의 으리으리한 시설을 과시하면서 세속적인 부의 축적을 통해 온갖 호사를 누리는 한편 막무가내의 교세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다. 빈자보다는 부자 편에, 약자보다는 강자의 손을 들어주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일부 종교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종교의 역사적 책임, 혹은 사회적 역할 문제를 항상 종교인과 함께 생각해 왔다. 종교와 종교인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범종교계, 특히 우리 가톨릭이 작금 사회적 역할, 그 책임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크나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규정(소설가·전 부산평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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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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