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다고
언제까지 변명하려느냐
몇 차례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무더위가 지나가길 기다린 한낮
나무가 알아보는 사람이
그 나무를 말하는 사람일까
가끔 나무가 하늘만 바라볼 때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공연히 세월 바람에
가지 늘린 나무 곁에 와서 응석을 부렸다
거미줄에 채인 몇 종류의 날개들처럼
울렁거리는 날을 오래 감추지 말아야겠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 기꺼이 부르실 때
“예, 저 여기 있습니다”
착하게 눈 뜨고 바르게 귀 열고
허물 수 없는 가슴으로 살아야겠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말도 아닌데 자꾸만 들린다
지시연(체칠리아·원주교구 용소막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