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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정의로운 평화 / 손서정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2학년인 작은 아이가 느닷없이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묻는다. 학교에서 서예가를 모셔서 붓글씨로 가훈을 써주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한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 갑자기 둘러앉아 각자 제 안에 있는 이런저런 말들을 꺼내 놓으며 가훈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 처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고 무척 곤란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 경우는 거꾸로 가훈이 너무 많아 그걸 어떻게 적어갈지를 걱정했었다. 유달리 가정적이었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가훈 100조'라는 제목의 노트를 마련해 빽빽이 채우고 계셨다. 하루 세 번, 3분씩 이를 닦는 세세한 일상생활의 원칙부터 당시 머리에 입력되기엔 심오한 철학까지 담겨있었던 걸 떠올리며 나의 게으름을 반성했다.

어쨌든 그날 저녁은 여러 개의 후보를 떠올리다 막상 정하지는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묵상을 하던 중에 '즐거운 사랑, 정의로운 평화'라는 구절이 머리에 정돈돼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말했더니 좋다고 한다. 그런데 즐거운 사랑은 웃기다고 하더니, 결국 하교 후에 들고 온 멋진 붓글씨는 '정의로운 평화'였고, 그날부터 우리 가족의 가훈이 됐다.

평화를 말하면 그저 고요한 평온을 떠올리기 쉽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런 고요함이 표면 아래에 들끓는 갈등과 불의를 덮어버려 평화가 유지되는 듯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의가 무시된 평온은 결국 폭발돼 더 큰 갈등으로 터져 나온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합의를 거쳐 갈등상황을 정의롭게 하나씩 풀어가는 그 과정이 바로 평화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염원하는 한반도의 평화가 멀게 느껴지는 것도 처음부터 정의롭지 않게 분단의 첫 단추가 끼워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인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돼 통치된다. 그 과정에서 반성을 통해 정의를 세우고 통일해 이제 유럽 내의 최강국으로 급부상했다. 반면, 전범국인 일본 대신 희생양이 돼 분단된 한반도는 강대국의 횡포에 휘말려 아직까지 식민지적 잔재 요소를 청산하지 못한 채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합리함을 외치기보다 친일세력이 유지하는 위상에 침묵하고, 많이 배우고 가진 기득권층이 위로부터 제시하는 조작된 프레임에 갇혀 작은 목소리를 묵살하는 종용에 굴복하고 있다.

무엇이든 참고 인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강요해 온 사회에서 무엇이 정의인지 고민해 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평화는 점점 멀어져만 갈 것이다. 더구나 나의 작은 목소리가 그들의 큰 목소리처럼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식을 따른다면 그 또한 다를 것이 없다. 모두를 사랑으로 품으신 그리스도 정신이 그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올해에는 정의로운 평화를 내 삶에서 실천하기 위한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겠다. 그러는 가운데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시편 85,11) 믿는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18.01.0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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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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