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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가면, 진정한 페르소나의 첫걸음

유혜숙 (안나, 대구가톨릭대 인성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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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광화문 광장과 서울역 광장에 무수히 많은 가면이 등장했다. ‘가이 포크스’로 형상화된 이 가면의 주인공은 바로 오랜 시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우리 시대의 ‘을’들이었다. 그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이 포크스(Guy Fawkes, 1570~1606)는 로마 가톨릭 혁명 단체의 일원이다. 1605년 종교개혁과 가톨릭 박해를 주도했던 영국의 왕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에 항거하여 그를 암살하려다가 밀고자의 신고로 죽음을 맞았다. 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은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라는 제목의 만화와 영화에서 주인공인 혁명가 브이(V)가 전체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혁명 활동을 벌일 때, 2011년 뉴욕의 월가에서 금융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을 때, 익명으로 활동하는 국제해커단체 ‘어나니머스’(Anonymous)의 한 남성 회원이 2015년 유튜브에서 IS와의 전쟁을 선포할 때, 어나니머스가 미국 사이언톨로지 종교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이고 그 지지자들이 이에 동참할 때 등장했다. 그런데 이 가면이 2018년 5월 한진그룹 구성원들이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때 다시금 그 존재를 드러냈다.

‘가면’은 페르소나(persona)로 불린다. 페르소나는 그리스어 ‘프로소폰’(πρσωπον, prospon)에 어원을 둔 라틴어로, 본래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고, 가면 외에도 역할, 인물, 인격, 위격 등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가면’과 ‘인격’의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먼저 혁명가 브이(V)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익명의 의미도 있다. 아마도 한진그룹 직원들은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의 뜻을 이루고, 사측의 참여자 색출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촛불집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물벼락, 괴성에 가까운 고함, 폭행, 밀치기와 당기기, 서류 내팽개치기, 밀수, 조세포탈, 비자금 조성, 상속세 탈루, 노조 방해, 노동자 해고와 차별 등 차고 넘치는 우리 시대 갑들의 행태에 끝까지 저항하고 승리를 다짐하며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이제 을들은 ‘저항’, ‘승리’, ‘불이익’, ‘익명’을 상징하는 ‘가면’을 넘어 진정한 페르소나, 곧 인격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네까짓 게 어딜 감히!”라고 생각하며 무수히 행해왔던 갑들의 갑질, 그 저급한 행태를 넘어 부와 명예, 학력과 스펙, 권력과 지위, 성과 연령, 인종과 문화, 자본가와 노동자 그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인격의 실현을 통해 “어딜 감히!”로 대변되는 갑의 시대에 진정 이별을 고하는 성공적인 을의 거사를 치러야 한다. 을의 반란은 일시적인 가면 집회를 넘어 매일의 삶 안에서 인격의 실현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갑의 시대에 이별을 고하는 을의 반란, 갑질에 대항하는 을의 거사, 그 성공의 열쇠는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 하나하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했던 인격자 나자렛 예수의 삶, 그 모범을 따름에 자리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인식의 전환, 부조리와 부패를 고발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제도의 개선,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갑과 을의 협력이 함께할 때 우리 모두가 꿈꾸는 평등하고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가면이 진정한 페르소나를 향해 나아가는 힘찬 첫걸음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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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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