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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를 다녀와서 / 송용민 신부

다름의 편견을 넘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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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삶의 여정을 걸어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다른 가정환경, 다른 교육적 배경, 다른 삶의 가치관을 접할 때마다 자신이 겪지 못한 이질감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때로는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면서 그런 다름을 부딪히며 비로소 내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도 느낀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내가 너무 좁게 바라본 세상,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겸손에 이르기까지 삶은 배움의 연속이란 생각을 한다.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8박9일간 이어진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도 이런 상호 배움의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2006년과 2009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 갖게 된 일치순례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본격적인 의미에서 교회일치 운동을 10년 넘게 해오면서 분열된 교회 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공유해온 신앙 유산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일치와 화해의 여정이었다. 이번 일치순례에는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인 김희중 대주교를 포함하여 천주교 대표 5명과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 대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김영주 목사와 기독교한국루터회 엄현섭 총회장, 그리고 감리교와 성공회, 장로교 대표들 13명이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의 지원을 받아 순례의 여정에 함께했다.

순례단이 찾은 첫 번째 순례지는 가톨릭교회의 심장부인 바티칸 로마 교황청이었다. 순례단은 먼저 가톨릭교회일치운동을 이끌고 있는 교황청 교회일치촉진평의회를 방문하여 위원장인 쿨트 코흐 추기경을 만나 가톨릭의 일치운동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듣고, 서로의 입장을 나누면서 내년에 부산에서 개최될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대한 협조를 청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연례적으로 열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의 일반알현에서 순례단은 제일 앞줄에서 교황의 환영을 받았다. 대부분의 개신교 대표들은 처음으로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는데다 교황을 처음 만나는 기회였기 때문에 만남의 의미를 뜻 깊게 새겼다. 신자들이 열정적으로 교황에 반가움의 인사를 전할 때마다 낯설어 하는 목사들도 있었지만, 가톨릭교회의 단일성과 신자들의 열정에 적지 않은 감동과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옛 유적과 베드로 사도의 지하무덤, 로마의 중요한 순례성당들과 지하무덤인 카타콤바를 차례로 방문하며 순례단은 초기교회 신자들이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성장시켰는지 공감하는 기회를 가졌다.

다음날 순례단은 전날 로마에서 느낀 화려한 제도 교회를 지탱해주는 수도회 전통이 살아있는 아시시를 방문했다. 청빈운동으로 오늘날까지 교회 영성의 균형을 잡아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한 삶과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의 흔적들을 만난 순례단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함께 깨닫는 기회를 가졌다. 아시시의 성지들은 오늘날 대형화된 개신교의 배타적 신앙과 형식적인 신앙으로 위기를 겪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난의 정신과 비움의 영성을 일깨워주는 순간이었다.

순례단의 두 번째 방문지는 개신교 일치운동의 중심부인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교회협의회 본부였다. 이곳에서 순례단은 세계교회협의회 트베이트 총무를 만나 환대를 받고, 내년 세계총회 개최와 관련된 주제들을 심도 있게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특히 이 토론회에서는 로마 교황청과 세계교회협의회가 40년간 이어온 일치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도 ‘일치운동을 위한 공동사무국’ 설립에 관하여 진지하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순례단은 제네바의 종교개혁 유적지와 일치운동을 학문적으로 지원하는 보세이 일치연구소도 방문하여 개신교의 일치운동의 현주소를 경험하였다. 전 세계에서 교회일치운동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 위해 모인 연구소에는 다양한 교파에 속해 있지만 ‘하나 되게 하소서’(요한 17,21)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 다른 교파의 전통을 배우고 신앙의 공동유산을 나누는 일치운동의 기초를 세우는 못자리였다.

순례단은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순례지이자 정교회의 중심지인 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로 넘어가 가톨릭교회의 자매교회로 불리는 정교회(Orthodox) 총대주교좌를 방문하였다. 동서방 교회의 분열과 화해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스탄불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성당은 과거의 화려했던 교회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이슬람에 의해 박해받는 현재의 정교회 현실을 보여주었다. 비록 한국교회에서는 생소하지만 가톨릭교회와 공의회 이후 가장 활발하게 일치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정교회 대주교의 환대는 고대교회의 역사와 예배의 전통을 담고 있는 정교회의 위상을 순례단에게 보여주었다. 이어 순례단은 이미 이슬람 모스크나 박물관으로 변경된 성소피아 성당과 몇몇 유적지를 찾아 교회일치를 향한 인내와 노력이 오늘날 이슬람과의 화해를 통하여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일치순례는 함께 여정에 참여한 순례단의 서로 다른 신앙적 배경과 신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분이신 하느님과 하나의 세례로 묶여진 그리스도인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파의 차이를 넘어 인격적 친교 안에서 우리가 왜 그리스도인인지를 느껴보는 시간의 소중함도 있었고, 우리가 서로 몰랐던 교회의 모습 속에서 배우고 깨달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일치운동의 출발점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였다.

일치순례를 마치면서 일치운동에 참여해온 신학자이자 사목자로서 내게도 이번 순례는 값진 배움의 시기였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며 함께 기도하고, 식사 전에 서로를 위해 기도와 축복을 청하고, 서로 잘 몰랐거나 오해했던 교회의 모습들에 대해 배우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의 시작이라면,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깨달으려는 열린 마음이 교회 일치를 향한 순례의 출발점임을 다시금 확인하며 앞으로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에 많은 신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다.


송용민 신부(인천교구 삼산동본당 주임·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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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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