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사람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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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사도 문화사 동반해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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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역사가 중요한가
   현대의 대표적 가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가 말하기를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다 라고 하였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위에 다른 사람들 속의 하나로 태어나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이 언어를 통로로 하여 하느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계시도 역사적 계시 이다. 역사 안의 구체적 현실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검증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 속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편적 세계에 이어져 있다. 보편적으로 통하는 의미가 아니면 누구라도 그 가치를 믿기 어렵다. 보편적인 여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다.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할 때 사도신경에서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하는 대목을 외운다. 가톨릭 교회 그리스도 교회는 보편된 교회이다. 교회의 개념도 오늘날에는 하느님의 백성 자체라고 한다.

 참으로 진리가 하나이니 교회는 보편된 세계를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이 보편 진리에 우리의 희망이 있고 목표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얼핏 보기에 제2의 십자군 전쟁같은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한반도에서는 외세에 의해 빚어진 민족 분단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교회사의 연구와 서술이 세속의 현실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는 실용적 역할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고 역사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을 감당하고 공동선의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다.
 자유와 책임의식에 바탕을 둔 도덕적 힘에 의해 인간과 사회의 자기완성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지향하는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의식은 진보사관이기보다 완성사관이다. 역사의 문제에 접근하는 최선의 길이 그려져 있는 지도가 되도록 우리는 교회의 역사 서술에 요청하고 싶다. 이것이 이 소론을 쓰게 된 동기이다.    ▨ 사관의 문제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설립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가졌다. 「교회사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다. 한 역사 연구소의 40년 연륜 자체가 소중하고 영예롭다. 개신교회사를 포함한 4개 주제 외에 기조강연과 축사까지 전문적 주제발표의 형태였다.

 축사를 맡은 중국 상해대학 고위민 교수는 중국의 교회사 연구가 한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음을 절감하면서 축사를 맡겨 준 데에 감격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짧은 축사는 전문 연구자로서 주요한 논지들을 총괄한 것이었다. 중국ㆍ 한국ㆍ일본이 비슷한 시기와 여건에서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그리스도교에 접했다는 것이다.

 동양의 유교 윤리는 그리스도교와 상충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상호 인식의 부족으로 전교가 억압된 시기가 있었다. 한국의 조선조 지식인들은 스스로 천주교와 서학을 받아들이고 순교의 바탕 위에 교회를 세운 독특한 모범이라고 하였다.

 지금 동양 3국 중 일본에서는 천주교 교세가 부족하고 중국은 공산당 1당 체제 아래 종교의 자유가 제약을 받고 있다. 각국이 자기 나라 문화의 관점에서 세계화를 지향하지만 세계 보편의 천주교에 가장 왕성하게 소통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뛰어난 활력도 이와 같은 여건 위에 있는 것이다. 최석우 신부의 기조강연 「교회사 연구와 교회사 서술의 문제」는 내용의 범위가 크고 원칙론적이었다. 신학과 역사학의 관계를 말하면서 각기 공존하며 떼어놓을 수 없는 것 이라고 하였다. 상호협력보다 거리를 두는 냉정한 어법이면서 결국 신학의 고유성에 우위를 두는 입장이다.
 구세사적 기초 위에서 교회가 겪는 그대로를 서술하려 노력해야하며 미래 목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사가의 월권 이라고 한다. 안정감은 있지만 사료중심 사관에 고착되는 인상을 준다. 현재 교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다고 했으나 수동적 접수 자세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다.

 참고적 첨부 형태인 오베르 교수의 제언 에는 하느님의 백성 평신도를 위한 교계제도 익명성의 구성원 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이라는 명시가 없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은 미래목표에 대한 예단이 아니며 현대 교회의 실천 강령으로 명시된 내용이다. 교회의 중심에서 이미 선택한 사항들이다.

 이렇게 된 시대 단계에서는 교회사 연구와 서술을 위한 사관 으로서도 새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구세사의 구체적 개념과 계시된 진리에 따라 시대의 징후 를 보게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황치헌 신부의 주제 「교회사는 신학인가」에서 사관의 문제는 보다 발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딘의 이론에 의거해 구세사와 교회론을 중심으로 한 최석우 신부의 견해에 비해 황치헌 신부의 사관은 보다 개방적이다. 그는 가톨릭 사학자 콘제미우스 교수가 신자 아닌 일반 역사학자로서도 교회사를 연구하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고 한 주장을 인용했다.

 교황 레오 13세가 바티칸 비밀문서고를 개방한 후 한 말도 인용했다. 역사서술이 잘못되어서는 안된다. 진리를 숨기지 않아야한다. 교회도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적인 약점에 대해서는 솔직해야하고 숨기려해서는 안된다.

 이 발표는 이제를로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교회사 서술이 ① 사료에 충실해야하고 ② 객관적으로 서술해야하며 ③ 미래 방향에 관해서도 논급해야한다고 하였다. 이 미래 방향 이 담겨있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 바로 발전된 부분이다.

 일반 역사학 분야의 방법론으로는 ① 19세기 전반 랑케의 사료 고증 ② 19세기 후반 테느의 배경 연구 ③ 20세기 쉬펭글러와 토인비의 당위적 방향 연구가 있다. 역사학의 이 사관 변천이 교회사 연구에도 고루 일치되고 있는 셈이다.

 교회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할 때 교회론과 신학이 절대적 전제조건이 되는 것일까. 신약성서에서도 교회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가 진전하는 여건 안에서 교회 제도들이 형성되었다. 이 점을 지적하며 한스 큉이 교회도 역사 안에 있다 고 말한 것이다.

 박찬식 교수의 주제 「역사학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회사 서술」은 마침내 교회 밖에서 보는 한국 천주교회사 서술의 문제점을 언급하였다. 19세기 이래 제국주의 나라들의 식민지 침략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소속 국가의 이익을 위해 첨병 역할을 한 점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서도 스스로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일제의 한국 침략에 대해서는 교회가 대체로 침묵한 편이며 해방 후에는 친미 사대주의로 일관한 점이 있다. 그러면서 교회사 서술은 조선조 후기의 순교에 치중하며 호교론을 펴 정당한 민족사 서술의 관점으로부터 긍정받지 못하였다. 실로 순교자 1만여명을 낸 한국 천주교회사 내용이 한국 사회 대중 뿐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매우 소극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상에는 그 책임의 소재 문제도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40주년 심포지엄의 성과는 이처럼 일반 역사학계 및 교회 밖 목소리를 수용한 데 있다. 이것이 보편된 교회로서의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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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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