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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생명윤리법안 논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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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마리아 요셉) 가톨릭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전임연구교수

최근 우리나라 생명공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종간 핵이식 기술 이용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은 다른 나라 과학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종간 핵이식을 허용해달라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연구에 수많은 인간 배아를 사용해야 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종간 핵이식 기술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우선 이종간 핵이식 기술은 인간의 체세포핵을 핵이 제거된 동물의 난자에 이식시키는 기술이다. 즉 이종간 핵치환을 통해 만든 복제배아를 이용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자유로운 규정을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도 이종간 핵치환을 이용한 배아복제는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이미 확보된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 외에는 향후 4년 동안 배아연구를 전면 금지한다는 방침을 상하원에서 결의했다. 다른 연구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보편적 인간의 도덕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혹자는 배아연구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연구의 자유’와 ‘난치병환자의 치료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구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어떠한 형태의 연구든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치료 받을 권리 또한 무제한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또 장기기증을 위한 장기적출의 경우에는 뇌사자를 죽은 자로 보는 한편 기증을 원하지 않은 경우의 뇌사자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처럼 자궁착상용 배아는 보호하고 치료연구용 배아는 보호영역에서 제외하고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배아는 모두 같은 지위를 갖는 것이지 우리가 임의로 구별해 차등적 보호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실험에 이용되는 배아들은 미래의 특정한 몇몇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를 그런 불확실한 연구를 위해 희생되므로 치료차원의 복제라는 것은 하나의 속임수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배아의 존재론적 지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배아실험 여부는 결정된다. 가톨릭 교회는 생명의 출발 시점에 이미 유전적 개체성이 결정되어 있으며 한 인간 삶은 수정 직후부터 바로 시작되기 때문에 배아복제 및 실험을 반대한다. 만일 배아가 이미 수정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라면 결코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수태 결과가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살인을 감행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중죄이다. 잡목 속에 움직이는 것이 동물인지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 사냥꾼은 총을 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일 배아가 인격체라면 그것은 생명권이라는 기본 권리를 갖는다. 인격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한 발 물러나 그것이 인격체에 이르는 통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수정과 동시에 인간의 삶은 시작된다. 과거에 배아로서 존재하지 않고서 지금 존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만일 배아는 인간이 아니며 잠재적 인간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잠재적 인간이 실제의 인간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없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잠재적 인간은 그밖의 다른 존재와는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인간 존엄성을 인정한다면 배아도 인간 존엄성에 준하여 특별한 배려를 받아야 하며 임의적 실험이나 수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양한 입장들을 종합해볼 때 이종교잡을 포함한 치료용 배아복제를 허용하여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하도록 생명법을 시급히 마련해달라는 생명공학자들의 촉구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

연구 성과가 좋아 생명연구분야의 선진국 대열에 끼는 것도 중요하고 난치병치료의 획기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해괴망측한 연구를 생각해낸 배경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들의 주장대로 반인반수의 키메라를 만들어내려는 목적이 아님을 인정해 주더라도 인간과 동물의 교잡을 통하여 형성된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인간 질병치료를 위해 이용하겠다는 발상은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까지 제시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2002년 9월 23일 보건복지부안이든 2002년 11월 12일 김홍신 외 국회의원들의 발의안이든 모두 기본적으로는 배아복제와 이종간 교잡을 금지하고 있지만 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허용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둠으로써 금지조항을 유명무실화하고 있다. 그러한 법이 어떤 효력이 있겠는가? 애초부터 대통령과 자문위 구성원들이 권한을 남용할 소지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생명윤리와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생명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하여 균형있게 발전해 나가려면 그에 필요한 제도적 보안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각계의 입장과 연구동향 및 정보를 정확히 수집하고 선진국들의 동향과 경험을 거울삼아 합리적 법규와 안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국민의 우려나 불안을 덜어 주어야 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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