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사람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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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대구지하철 참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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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비탄과 한탄이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란 말인가? 원고 청탁을 받고 내면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라는 무력감뿐이었다. 이 엄청난 재난 앞에 그것도 두 번의 큰 희생 앞에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란 말인가? 억장이 무너지고 하늘이 원망스러워 땅을 치고 통곡을 해 눈물이 메말라 버린 마음에서 무엇을 토해낼 수 있단 말인가?
앵무새처럼 되내이는 매스컴의 소리를 또다시 반복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이번 사고의 원인을 진단하라는 것인가? 이번 사고의 진단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에게 물어보라 정확하게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항상 되풀이 되는 사고와 되풀이 되는 원인 분석이기에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까지도 그 진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항상 사고의 진단만 있었지 진정한 처방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껏 처방도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당국자들은 뭐 잘했다고? 언론은 뭐 잘 한 것이 있다고? 교회와 우리는 뭐 한 것이 있다고 떠들 수 있나? 총체적인 부조리 속에서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더 위로가 되고 반성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냥 침묵하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기에 그래도 떠들어야 마음의 비겁함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고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찢겨진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 같아 이 글을 올리게 되었다. 제발 이젠 좀 사람을 생각하자. 우리는 사람이면서도 그동안 사람을 생각하는 일에 너무나 소홀했었다. 맹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우리 사회는 사람을 도외시하는 풍조가 아주 당연시되며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단지 물질 우위의 가치관 속에서 사람의 정신과 문화가 물질의 지배를 받고 물질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 사람을 존중하는 것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마치 구시대적 유물인양 뒷전에 내 팽개쳐 버렸다. 제발 이젠 좀 사람을 귀하게 여기자. 사회의 중심과 기초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위한 사회이지 사회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중심과 기초가 급격히 무너져 가고 있다. 삶의 철학이 무너지고 삶을 위한 학문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시대에 우리는 사람보다는 외형적인 성장과 빚 좋은 개살구식 결과를 더 중요시 해왔다. 그 결과 이러한 참사를 초래하였다.
마치 모래 위에 호화찬란한 집을 지어 한 번의 폭풍에 무너져버린 것처럼 형식과 외형적 성장만을 삶의 목표로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온 삶의 현실이 바로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제발 이젠 좀 사람을 먼저 생각하자. 집을 지어도 도로를 만들어도 다리를 만들어도 그 외에 어떠한 것을 만들어도 사람을 우선으로 좀 생각하자. 너무 답답해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두 살짜리 아기가 있는 한국 유학생 부부가 있었다. 논문 쓰기에 바쁘다 보니 아기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기가 아빠 옆에서 놀다가 아빠가 쓰던 오타 수정용 타자종이를 빨아 먹었다. 뒤늦게 발견한 부부는 응급구조대에 연락을 하였다. 응급구조대는 그 제품의 생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 번호를 알려주자 응급구조대는 『그 제품을 조회한 결과 이러한 일을 미리 대비에 인체에 무해한 약품으로 만들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부끄럽지만 좀 배우자. 그리고 사람을 위하는 세상을 좀 만들자. 이제는 사람을 위한 일들을 경제적 공식과 이론으로 평가하지 말자.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서 경제성을 생각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그랬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사람을 위하지 않는 사회는 후진국이며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그 사회는 미개한 사회일 뿐이다. 또한 사람이 사람을 그 분풀이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만큼 사회가 병들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병든 사회에 치유는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일회성 구호에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말고 이제는 이 병든 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하겠다. 이젠 사람 좀 삽시다. 제발!
김정우 신부 대구 용계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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