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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대건 신부 탄생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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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탄생지는 ‘당진 솔뫼’ 본 내용은 지난 11월 9일 수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하성래 박사가 「성 김대건 신부와 은이 및 굴암」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데 대해 차기진 박사가 토론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김대건(안드레아) 성인 신부의 탄생지나 거주지를 알려주는 주요 기록으로는 「일성록」 「기해.병오 순교자 목격 증언록」(시복 재판 기록) 모방 성인 신부의 「조선 신학생 서약서」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기해.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등이 있다. 한편 교회 전승으로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가 「면천 솔뫼」라고 알려져 왔다. 이 중에서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모방 신부가 직접 신학생들로부터 선서를 받으면서 작성한 「서약서」와 김 신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최양업 신부의 번역문인 「순교자들의 행적」이다.
물론 「일성록」도 1차 사료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김 신부가 시종일관 자신의 행적과 교회 일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모방 신부의 서약서에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를 정확히 「면천 솔뫼」라고 기록하였다. 또 최양업 신부도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충청도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였으며 훗날의 증언에서도 자주 김신부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게 볼 때 「일성록」에서 김대건 신부가 『자신은 용인 태생』이라고 진술한 내용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마도 김신부와 함께 잡힌 신자들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김신부는 용인 사람』이라는 진술이 나왔고 형관들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 신부가 『그렇다』고 인정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 「목격 증언록」에 나오는 「용인 굴암」은 그 증언자가 김신부의 부친 김제준(이냐시오) 성인이 한때 거주하던 곳을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부친이나 선대의 고향을 들어 자신의 고향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방 신부는 조선인이 아니라 서양인이므로 이러한 통례로 김대건 신부의 고향을 기록하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같은 「서약서」 안에 있는 최신부와 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고향도 아주 정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방제의 부친 최인호(최형 성인의 부친)의 고향은 충청도 홍주인데 모방 신부는 부친의 고향을 적지 않고 정확히 「남양 태생」이라고 적었다. 반대로 마카오 신학교의 교장 신부는 최방제의 고향을 홍주라고 기록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통례를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김신부의 부친 김제준 성인은 한때 냉담 상태에 있다가 정하상(바오로) 성인을 만나면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따라서 냉담 기간 동안에는 고향 솔뫼에 있으면서도 박해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김제준 성인은 신앙을 회복한 뒤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난 것이 분명하다. 그 시기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 이후라고 추정된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기록으로는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순교한 김명집(루도비코)의 순교 행적이 있다. 그는 김대건 신부의 친척이었는데 1839년 무렵까지도 「범천면 송산」(즉 면천 솔뫼)에서 살았던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김 신부의 집안이 박해 때문에 일찍부터 솔뫼를 떠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는 용인이 아니라 「면천 솔뫼」임이 분명하다.
그의 집안은 솔뫼에서 살다가 김제준 성인이 신앙을 되찾고 김 신부가 탄생한 이후 「솔뫼 → 청파 → 양지 골배마실 → 용인 굴암(즉 한덕골) → 은이 상뜸이(양지 골배마실)」로 이주하였다.

차기진 박사 양업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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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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