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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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소파개정촉구 전국대회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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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전에서 부안을 내려오는데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가고 곳곳의 나무들은 단풍이 들어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빛깔이 아름다울수록 웬 지 제 마음은 서럽고 한스러웠습니다. 우리의 딸 미선이와 효순이도 이처럼 맑은 가을 하늘아래서 아름다운 빛깔로 자라고 있어야 할 때인데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효선이와 미선이가 억울하게 죽은지 120여일이 지났습니다. 세월은 이리 흐르고 오만한 미군과 친미 사대주의에 찌들은 정치인들은 침묵과 방기로 일관하며 우리도 일상에 묻혀 이 모든 일들도 지나는 세월 속에 묻히고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풀밭에 나뒹굴던 운동화 흥건한 핏자국 낮게 짓이겨진 풀 자리를 눈앞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귓전을 흔드는 아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결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친구의 생일파티에 대해 얘기하고 미래를 꿈꾸며 걷던 정겨운 들길은 죽음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길의 나무와 풀과 꽃들은 지금도 효순이와 미선이에 대한 기억 속에 치를 떨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제 나라 땅에서 제 자식들이 비명 속에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우린 지금 살인자들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과실로 넘겨버리는 미군의 변명과 거짓말과 은폐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어야 합니다. 미군은 당시 책임장교를 본국에 보냈습니다.
미군은 미군에 대한 형사재판권을 한국에 넘겨줄 수 없노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지난 9월 24일 첫 재판을 비밀리에 진행하였습니다.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법정에서 살인 군인 마크 워커 병장의 변호인이 무죄를 주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군은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틈을 타 기만적으로 재판을 강행하여 명확한 살인을 과실치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는 미군의 여학생에 대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사과를 했습니다. 우리는 학생이 한꺼번에 둘이나 대낮에 장갑차에 깔려죽었는데 단순한 과실이라는 말만을 반복해서 듣고 있을 뿐입니다.
그동안 종교 시민사회단체에서 「살인미군을 한국법정에 세우고 부시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범국민서명운동」을 벌여 100만에 가까운 서명을 받아 미군 측에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미군은 한국민의 요구와 열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재판을 강행한 것입니다. 이는 지난 6월 13일 미군의 장갑차에 의한 살인에 이어 불평등한 SOFA에 의한 두 번째 살인행위입니다. 즉 이러한 굴욕적인 모든 상황을 강요하는 것은 한국 내에서 미군의 지위와 역할 권리를 규정한 한미행정협정 즉 소파(SOFA) 때문입니다.
미군은 고속도로 갓길을 「소파 레인(SOFA Lane)」이라 부른답니다. 한국 자동차는 못 달려도 미군차는 아무 때고 달릴 수 있으니까요.
효순이와 미선이의 들길도 미군은 그렇게 여겼을 겁니다. 그 들길이 주민과 아이들과 한국민들의 것이요 그들의 삶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미군이 통제하고 미군이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소파레인으로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은 전투기(F15K) 군함(이지스 함) 등 무기를 압력으로 팔아 천문학적 액수의 우리 돈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용산 미군기지 내에 1066가구가 들어서는 4만 5000여 평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합니다.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금(방위비 분담금)을 4억9000만달러(5880억원)를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동안 매해 10.4 가량 늘어납니다.
매향리 국제폭격장 파주 스토리 사격장 미8군 독극물 방류문제는 너무 알려진 문제라서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용산미군기지내 곳곳에는 기름으로 오염되어 이것이 부내밖으로 흘러나와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왕궁 터에 미 대사관과 직원들의 숙소를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용산 미8군 평택 군산 등 여기 저기 우리의 땅을 강압적으로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명피해 물질피해 토지 피해 환경 피해 정신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미연합사 MD 기구」 창설했습니다. 이제 미국의 전술 전략에 휩쓸리게 되어 있습니다.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남북은 간담이 싸늘해졌습니다.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미선이와 효순이는 그렇게 식민지로 살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안일하게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희생 제물이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아이들의 죽음은 너무도 참혹하고 억울합니다. 미군이 지금처럼 한국에 주둔하는 한 한미행정협정을 지금처럼 그대로 두고서는 효순이와 미선이같은 죽음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질 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미선이와 효순이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자기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친구들이 무사하기를 친구들이 자신들처럼 죽어가지 않기를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매순간 기도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희도 함께 기도합니다. 그동안 각 교구별로 해왔던 기도를 한데 모아 11월 4일 오후3시 미대사관이 바라보이는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시국기도회」를 가집니다.
이번 시국기도회를 통해 미행정부에 엄중히 항의하고 대통령후보들에게 소파개정 의지를 공개적으로 질의하여 이를 대선 공약으로 반영하도록 하여 차기정권에서 불평등한 소파를 전면 개정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희생제물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우리의 용기와 행동입니다. 미국에 대한 미군에 대한 환상과 의존심이야말로 우리가 들려있는 귀신의 실체입니다. 이 미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더 이상 미선이와 효순이처럼 꽃 같은 죽음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정의와 생명을 갈구하는 우리의 절실한 마음과 용기를 드러내고 그것을 이루게 해주십사 소리내어 청하고 또 청해봅니다.
문규현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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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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