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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성월 특별기고 성모발현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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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회개 위해 묵주기도 당부”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시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과 같이 복음을 전하시다가 죽으시고 승천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는 성모님은 『은총의 중개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성모님은 전 세계 「모든 사제들의 수호자(Patroness)」이고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시다. 그리고 교회 전례력을 보면 성모님과 관련된 축일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비롯하여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 축일」 등 17개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모님에 대한 공경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 전 세계에는 성모님에 대한 성지가 수없이 많다. 필자는 다행히 전 세계의 여러 성모 성지를 순례할 기회를 가졌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세 군데 성모 발현 성지를 순례한 체험을 교우들과 같이 나누기 위해 이 순례기를 쓴다. 1. 과달루페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 성지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루르드나 파티마 성모 성지와 비교하면 조금 생소한 성지이다. 그러나 북미주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가장 유명한 성모 발현 성지이다. 성모님은 1531년 12월 9일 폐테약 언덕에서 성당으로 가던 인디언 농부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성모님은 디에고에게 『주교님에게 가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드러나도록 이곳에 성당을 세우도록 이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들은 주교님은 디에고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증거를 가져오면 성당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디에고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나타나신 성모님께 주교의 말을 전하자 『내일 이곳에 오면 기적을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그 언덕에 가니 12월 겨울인데도 수많은 장미꽃들이 피어 있었다.
디에고는 장미꽃들을 인디안들이 입는 옷인 틸마 앞자락에 담아서 주교관으로 갖고 갔다.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서 옷자락을 펼치자 장미꽃들이 사무실 바닥에 흩어졌다. 주교님은 장미꽃보다 디에고의 옷에 인디안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성모님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교님은 성모님의 그림을 보고 성모님의 발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교황 비오 10세는 과달루페 성모님을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수호자로 그리고 비오 11세 교황은 알래스카를 포함해서 북미주와 남미 전체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후안 디에고는 1990년에 복자 위에 올랐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금년 7월 30일 과달루페 성당에서 거행된 시성식 미사에서 후안 디에고를 최초의 인디언 성인으로 선포했다.
오늘날 중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은 성모님을 최초의 해방신학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성모님께서 후안 디에고에 인디언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디안 말로 메시지를 줌으로써 억압받는 인디언들도 백인과 다름없는 「고귀한 인간(Truely human beings)」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2. 파티마 파티마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약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1917년 5월 13일 성모님께서 이곳에 살고 있는 어린이 세명(루시아 10세 프란치스코 9세 히야친타 7세)에게 처음으로 발현하셨다. 이후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마다 6번에 걸쳐 성모님은 이 어린이들에게 나타나셨다.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죄인과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의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한다』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발현 때는 기적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마지막 발현 날인 10월 13일에는 포르투갈 전역에서 7만여명의 사람이 모여 들었다. 흐린 날씨 속에 구름이 걷히자 태양이 한바퀴 돌고 난 후 땅으로 떨어지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교회는 마지막 성모 발현 때 일어난 기적을 본 후에 세 어린이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을 인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모 신심이 깊으신 분이다. 1981년 5월 13일 「파티마 성모 축일」에 교황님은 일반 알현을 하고 전용 지프로 순례객들에게 강복을 주는 사이에 터키 청년의 저격을 받았다. 교황님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총탄 제거 수술을 두 차례 받았고 다행히 치명상이 아니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셨다. 교황님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준 분은 「파티마 성모님」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1982년 저격 1주년이 되던 날 파티마를 순례하시고 기념으로 당시의 총탄을 파티마에 남기셨다.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교회는 공산주의의 회개를 위해 푸른 군대(Blue Army)를 만들어서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쳐왔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1980년대 말부터 동구권부터 시작하여 소련까지 몰락했다.
3. 루르드
루르드 성모 성지는 어떤 곳인가? 성모님은 가난한 집의 14세 어린 소녀 벨라뎃다에게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번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어린 벨라뎃다에게 본당 신부님에게 가서 이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전하라 하셨다. 벨라뎃다는 본당신부에게 가서 성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본당신부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며 첫 영성체도 못한 소녀에게 성모님이 발현해서 성당을 지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녀에게 나타나는 분의 이름을 알아오라고 했다. 벨라뎃다가 성모님께 본당 신부의 말을 전했더니 『나는 원죄없이 잉태한 자(I am the Immaculate Conce
tion)』라고 하셨다. 벨라뎃다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제관까지 가는 동안 계속해서 외어서 본당신부에게 그대로 전했다. 이 말은 들은 본당신부는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을 확신하고 주교에게 보고를 드렸다. 그리고 교회는 1862년 1월 18일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께서 벨라뎃다에게 발현하신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면 지금도 루르드에서는 기적이 일어나는가? 이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세계적인 유명한 월간 잡지인 「리더스 다이 제스트」를 읽다가 「성모님의 기적」이라는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태리의 한 군인이 대퇴부에 악성 암에 걸려서 약 1년 동안 육군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병이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뼈는 거의 없어지고 근육으로만 다리가 붙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군의관들은 본인과 부모들에게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이제 성모님께 의탁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과 같이 루르드에 가서 며칠간 순례를 하고 기적수에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별로 차도가 없었다. 어머니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아들과 17시간동안 열차를 타고 다시 루르드 순례를 했다.
루르드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서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병이 완치된 군인은 얼마 후 의가사 제대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루르드에 순례를 가서 자신의 병상 기록을 루르드에 있는 국제 의학 심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위원회는 기록을 검토한 후 이것은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일이고 루르드를 순례한 후에 ?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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