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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특별기고(4.끝) / 순교신심 이렇게 다져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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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선조들의 삶은
변혁 재촉하는 징소리 김진소 신부 (호남교회사 연구소장) 역사는 조상들의 생활과 경험 곧 삶의 이야기이다. 역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할지 귀중한 교훈을 준다. 순교신앙은 순교자의 정신과 삶을 계승하는 신앙이다. 우리는 순교자들이 살았던 삶과 정신적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 만약 순교자의 삶과 정신이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면 순교자의 삶과 정신을 강조하는 호소가 품바타령으로 들릴지 모른다.
한국문화의 정신적 전통은 민족과 나라를 수호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고난의 삶을 극복하며 목숨바친 선열들의 정신을 역사의 추진력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정신문화와 순교정신은 무관하지 않다. 순교정신은 한국교회의 정신이요 순교신심은 한국교회 신심의 특징이다.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삶을 붙따르는 사람들이다. 순교신앙은 우리와 같은 피와 살 냄새 정서를 가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를 붙따르던 삶이므로 더욱 친근감과 호소력이 있다.
신앙공동체는 순교자의 삶.신심.정신 등을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신도들은 그것을 모른다. 오늘날 신도들의 순교자 공경이 표피적이고 감상적이고 행사적이고 기복적이고 신비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역사연구자들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 순교자들의 삶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본받겠는가. 순교신앙은 체험적이고 실천적인 것이다. 종교적 행사 위주·성사의 형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신앙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감동적인 시대는 50년 동안 거의 성직자도 미사도 성사도 없이 스스로 살며 신앙을 뿌리를 내렸던 초기교회이다. 이 시대의 순교신앙은 스스로 하느님을 알고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 하느님을 체험하며 믿음을 뿌리내린 신앙이었다. 선조들은 신분질서에서 해방되어 인간을 평가하던 빈부귀천의 껍데기를 벗었다. 선조들의 하느님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사변적인 철학의 하느님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과 핏속에서 혼을 느끼는 하느님 유전인자처럼 내 안에 생명의 모태로 계신 하느님이었다. 윤지충은 법정 증언에서 자신이 태어난 한국문화의 정서로 하느님을 자식의 가슴과 삶 속에 항상 함께 계시는 「부모」로 말하고 정약종은 그의 저서인「주교요지」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자녀를 낳아 기르시는 부모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최해두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꾸짖으며 지은「자책」에서 예수의 십자가 고통을 바라보고 불효자의 반성으로 참회하며 통곡하였다. 선조들은 젖먹이의 머리와 가슴속에 항상 엄마생각이 꽉 차있듯이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항상 하느님 생각에 의식이 깨어있었다. 선조들은 신앙의 첫걸음부터 영혼을 하느님 모습 신적 생명이라 배웠다. 영혼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처럼 존귀하고 평등하였다는 것이다. 이론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셔 한 몸이셨다. 사람의 몸이 곧 하느님 몸이 되었다. 선조들은 깨달음이 여기에 자지러지고 말았다. 내가 하느님이라니! 신명이 났다. 유교로 뼈가 굵어진 조상들은 아는 것을 실천하고자 바위를 갈 듯 몸을 닦아 왔듯이 죄악의 뿌리인 교만.질투.탐식.분노.탐욕.음란.게으름을 쳐 이기고자 겸손.사랑.절식.인내.베품.근면의 창을 들고 완덕의 길을 가기 위해 숨쉬듯 싸웠다. 길고도 먼 영적투쟁 수행의 생활이 일과였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식된 효행의 길이요 하느님의 거룩한 몸인 자신을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조상들은 소유욕과 지배욕 사심과 탐욕의 단단하고 질긴 끈을 끊고자 몸을 닦던 수행자였다. 복음의 요구대로 완덕을 향하여 꿈꾸고 노래하였다.
조상들의 신앙공동체는 하느님을 부모로 모신 가족공동체였다. 신도들은 오다가다 만나 헤어질 나그네가 아니라 몸과 마음 영혼으로 완전하게 맺어진 사이였다. 신앙공동체의 생명은 나눔과 섬김으로 피가 돌았다. 그래서 선조들의 신앙공동체를 선교사들은 사도시대의 초대교회라고 감탄하지 않았는가. 어디서든 자기 주장.생각.감정이 주인이 되고자하는 더러운 교만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뢰였다. 그래서 공동체의 숨통인 화목을 제일이라며 지극하게 노래불렀다. 영원한 삶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선조들의 삶은 변혁을 재촉하는 징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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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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