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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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일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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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심이 농민에게는 큰 힘” 경제위주 정책에 농민 설자리 좁아져 농촌문제는 농민 뿐 아니라 모두의 몫 서울지역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이 농활을 마치고 떠나니 다시 농촌은 적막합니다. 아이들은 그 동안 신나게 어울려 놀아주던 언니들이 떠나고 난 허전함에 며칠 동안 그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포기한 듯 저희들끼리 잘 놉니다. 『산천은 이미 푸르를대로 푸르러 / 모든 것이 걸렀다는 생각이 들고 / ....』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한여름에 들어서자 다시 농민주일입니다. 농민주일을 맞을 때마다 약간 당혹스럽습니다. 「농민주일」이라니.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이 우리 교회 안에서 벌어지더니 농민주일을 제정하여 특별히 농민을 위해 기도하고 2차 헌금까지 하여 농촌 농민 돕기를 한다고 합니다. 고마워 해야할 일인지 부끄러워 해야할 일인지 아니면 기분이 나빠 언짢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농민의 입장에서 농민주일이면 항상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오죽하면 농민주일까지 생겼을까. 어쩌다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까지 벌어지게 되었나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물론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 농민만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그 고통을 농민이 온통 감당하고 있다는 데서 운동이 생기고 제도가 나왔겠지만 어쨌든 남이 나서서 살리겠다고 하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농촌과 농민의 어려움을 알고 온 교회가 나서 주니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이런 궁금함이 있습니다. 도시 교회의 신자들은 - 대부분 언젠가 농촌에서 떠나간 지금은 소비자인 - 농촌 아니 농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나가다 불쌍한 사람 만났을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일까? 열심히 일하고도 구박받으며 임금은 싸게 받는 영세민을 보는 것 같은 연민 어린 시선으로 우릴 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과연 도시사람들은 농민주일을 어떤 마음으로 맞으며 보내는지 행여 농민단체나 전례에 관계되는 분들을 제외하면 농민의 삶과 자신들의 관계를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의문입니다. 그냥 의례 돌아오는 날이니 그렇게 지내고 마는 것이 아닐까? 농사나 농촌 그리고 농민에 대해 유난을 떤다고 오히려 귀찮다는 생각이나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는 아니지만 궁금증이 생깁니다. 농민주일이 가까이 다가오면 특히 그렇습니다. 어제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분회 대표자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안동의 김덕기 회장은 모를 심고 36일째 혼자 논을 맨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오늘도 이웃 마을 아주머니들을 놉해서(품을 사다 일꾼을 사다) 여러 날 째 논을 매고 있습니다만 그곳에서는 사람이 귀해 놉을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제초제를 뿌리면 해결되지만 끝까지 혼자서 맬 것이라고 했습니다. 농촌이 어렵고 농민의 삶이 고달프다고 하지만 어찌 힘들고 어렵기만 하진 않습니다. 때로는 보람도 있고 도시생활에서 맛볼 수 없는 재미도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분회에서는 월례회의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생태마을 공동체 만들기」라는 주제를 놓고 각자의 의견을 모아 희망을 키워 나갈 것입니다. 경제 위주의 정책과 조류 속에서 농업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농민들의 삶도 점점 불안해지고 있지만 아직은 이렇게 당당하게 우리의 일-농사-을 하고 있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적어도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주일을 정한 교회의 뜻도 「불쌍한 농민을 돕자」는 것이 아니라 수고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농민들과 함께 하자」는 것이겠지요. 교회나 농민들이 농촌 농민의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귀기울이는 이가 적은 것 같아 때로는 조금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우리가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따뜻한 눈으로 관심을 가져주시고 작은 일에라도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면 우리 농민들에게는 분명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희망을 가까이 끌어당기는데 말입니다.
오덕훈 자선 토마. 안동가톨릭농민회 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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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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