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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도행사건 환송심 판결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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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7일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이종찬 부장판사)는 이른바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으로 알려진 피고인 이도행에 대한 살인 현주건조물방화 피고사건의 환송심(98노3116) 판결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 사건은 1996년 2월23일 제1심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고 사형 1996년 6월26일 제2심에서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무죄 1998년 11월13일 대법원에서는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한 후 2년3개월간 환송심에서 검사와 변호인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갔으므로 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범죄사실이 반드시 직접 증거만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는 간접증거라고 하더라도 증거 전체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에 의하여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범죄수사의 현주소 재판의 원칙과 실정 법관의 자질과 성실도 등을 가늠하는 데 모델 케이스가 될 만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급심과 상급심 사이에서 유무죄가 엇갈려 사건이 오르락내리락 한 일은 외국에서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1971년 6월30일 대연각호텔의 덕성여대 메이퀸 추락사건이 아마도 가장 주목을 끈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 사건도 무기징역과 무죄가 왔다갔다하고 대법원이 제2심(서울고등법원)판결을 3번이나 파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의 판결과는 반대로 무죄를 두 번이나 선고하였던 사건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과 공방의 내용을 소개( htt
://org.catholic.or.kr/chrc/ ) 하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고(이번의 무죄판결만 하여도 판결서가 A4용지로 104장이나 된다.) 또 아직은 검찰의 상고가 남아 있으므로 사건의 실체에 깊이 들어가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법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형사사건에서 무죄라는 것은 ‘죄가 없어서 무죄’인 것이 아니라는 기초적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죄가 없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해서 ‘유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환송판결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가 ‘합리성이 없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증거가 개별적으로는 의문점이 있더라도 전체가 갖는 종합적 증명력을 부인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한 것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말이다. 이 사건 피해자를 피고인이 죽였다면 그 시각은 6월11일 밤 10시30분(언니와 통화한 시각) 이후 6월12일 아침 7시(피고인이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 출근한 시각)이다. 그런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는 6월12일 아침 7시 이후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살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범행의 동기이다. 피고인은 1995년 4월말 군복무(공중보건의)를 마치고 방화동에 외과의원을 개원할 예정으로 있었고 피해자인 처는 이미 불광동에 치과의원을 개업하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개업하면 바쁠 터이니 그전에 여행 좀 하자고 5월31일부터 6월5일까지 괌(Guam) 섬에 여행을 갔다온 지 1주일도 안되어 이 사건이 난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처와 딸을 죽이는 일인데 어떤 감정이 있었던들 함께 외국여행 갔다온 지 1주일도 못되어 이 두 사람을 죽였다면 적어도 그 1주일 사이에 죽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할 만한 동기가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수긍할 만한 동기가 없다.

유죄 판결에는 엄격한 증거 완벽한 증거 또는 합리적인 의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를 요한다고 한다. 만일 건전한 상식으로 그리고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아닐 수도 있겠다’고 즉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면 피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라는 것(In dubio
ro Reo)은 형사재판의 초보이다.

이 사건에는 피고인이 그 처와 딸을 죽였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점이 있다. 모든 가능한 의심이 다 풀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면 품을 수 있는 의심이 풀리지 않으면 피고인은 ‘무죄’인 것이다. 이번 판결이 이런 원칙에 따른 것을 환영하고 찬성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변호해 온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의 노고에 치하의 말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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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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