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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산가족 상봉은 냉전 상처 보듬는 감격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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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5년부터 1993년까지 노동사목을 하며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영등포구 구로동과 도림동 전라도 등지의 공단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들 대부분은 북한 출신의 이산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북의 공통적인 언어와 풍속으로 단일민족 한반도 우리나라 식의 사고를 하기 때문에 이 분단은 인위적인 절단일 뿐이지 한나라라는 신념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0년간의 분단은 큰 고통과 깊은 상처를 남긴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이며 반세기에 걸친 냉전의 상처를 끌어안는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처음 시행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지학순 주교님과 누이의 상봉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때 그 사진을 보셨는지요? 그 사진에는 초현실주의적 영상이 겹친 두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서로 잘 있다는 형식적인 말과는 너무도 다른 안타까운 눈과 눈의 대화가 이들의 아픔을 얘기해주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천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 라고 말하는 그 누이의 눈빛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고통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산가족들의 상봉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며 눈물과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민족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남한은 오랫동안 좋든 나쁘든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반면 북한은 국가 전체가 냉장고에 그대로 잘 보관된 형태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50년 전의 한국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화합의 과정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발달한 남한이 이런 냉동 상태의 북한을 어떻게 잘 포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멸시하지 않고 현명하게 감싸안을 수 있는 지혜를 실천해나가는 데는 인내와 민족애 그리고 한국인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단계적인 진전이 필요합니다.

또 한가지 큰 문제는 서양 물질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남한 젊은 세대들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민족화합을 위해 왜 자신들이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80년대의 대학생들은 용감하면서도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신세대의 사고방식은 아주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역할이 크게 필요할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잘 아시죠?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며 언제나 자유인으로서 발언할 수 있는 이런 분들이 젊은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에 나서실 것으로 믿습니다. 국가의 대업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일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훌륭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마침 특별히 정한 대희년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교회가 솔선수범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와 민족화해의 대희년인 올해에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 모든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한국의 평화적 통일을 믿습니다.


올리비에드 베랑제 (주교 프랑스 생드니 교구)

【약 력】▲1938년 프랑스 쿠르브와 출생 ▲70년 영국 버밍엄대 신학박사 ▲76∼93년 한국에서 노동사목(한국명 오영진) ▲94년 로마 교황청 전교회 프랑스지부장 ▲96년 프랑스 생드니교구 주교 서품 ▲‘서울의 예수 생드니의 예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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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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