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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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민들레의 자리와 하늘- 이해인 수녀의 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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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1976년에 출간됐으니 올해로 만 30년이 된다.

 첫 시집 발간 이후 이해인 수녀는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다. 이 수녀는 세속을 떠난 수도자의 몸이지만 언어가 문자로 찍혀 발간되는 과정은 어차피 사회 속 일이다.

 동아일보가 작년에 지난 25년 동안의 서점가 실적을 조사해 보도했다.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의 기록을 보면 법정 스님이 9회 이 수녀가 11회로 최정상의 베스트셀러 저자로 돼 있다.

 이것은 단순한 상행위를 넘어서는 다른 의미로 볼 수 있다.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는 한국에서 군부 독재가 지배한 세월이었다. 이 기간에 문학은 치열한 저항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진리의 차원을 지니는 종교적 심성의 글들이 상처받은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영원한 가치에 향하는 희망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 위로와 희망의 지향에서 이 수녀의 시와 산문들이 한국 사회에 이바지한 바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 고 한다. 마음이 순수했고 저력과 조짐을 잘 드러내던 그 출발점에 대해 일깨우는 말이다. 이 수녀의 초심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초심에도 이러저러한 차이는 있겠는데 「민들레의 영토」에는 이 수녀 시세계 모습과 규모가 충실히 담겨 있음을 30년이 지난 오늘에 새삼 발견하게 된다.

 「민들레의 영토」에 최근 저작인 「작은 위로」와 「기쁨이 열리는 창」을 보탠 범위에서 이 수녀의 시세계를 살펴본다.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흘러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싶은 얼굴이여 ( 민들레의 영토 에서)
 길가 좁은 영토에 피는 고독한 민들레 꽃이지만 어여삐 보는 하느님의 맑은 눈물이 빗방울인양 떨어지면 민들레는 기쁘게 꽃씨를 날려 보내려 한다.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이. 보고싶은 얼굴이여 원색의 아픔 속에서 연인을 기다리듯 보고싶어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사뭇 인간적으로 표현돼 있다.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 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 유월엔 내가 에서)
 하느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연속이다.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했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분신인 사람이니 하느님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신비에만 가려져 있다기보다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인식이 신앙을 생동케 한다.

 그러면서 세속을 성직처럼 성직을 세속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하비에르 성인의 말처럼 수도자는 세속의 고향에 대한 사랑에도 소홀할 이유가 없다.

  비오는 날/ 유리창이 만든/ 한 폭의 수채화// 선연하게 피어나는/ 고향의 산 마을 ( 어느 수채화 에서)
 이해인 수녀 고향이 강원도 양구인데 거기에 연유하는 향수일지 고향은 삶의 뿌리이자 자연이다. 자연은 거의 하느님과 같으며 자연의 상징적 거점은 산이다.

  나는/ 산에서 큰다/ 대답없는 대답/ 침묵의 말씀 ( 산에서 큰다 에서)
 레오나르도 보프의 「성사(聖事)란 무엇인가」에 실린 서문은 시처럼 아름답다.
  산은 마치 하느님같습니다. 모든 것을 떠받치며 온갖 것을 겪어냅니다.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품 안에 안아 들입니다.

 보프의 이 말은 이해인의 시 산에서 큰다 와 뜻을 같이 한다. 자연에는 산과 더불어 강이 있다. 말없이 무한정/ 말이 깊은 강 ( 저녁 강가에서 에서)

 구상 시인의 시 오늘 은 하루가 영원 속에 이어져 있다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이다. 강의 한 유역이 오늘이라면 이것은 옹달샘과 바다에 이어져 영원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쉼보르카의 시 되풀이 되는 것은 없다 는 어느 찰나의 일도 꼭 같은 모양으로 되풀이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순간의 이 고유한 존재론적 본질이야말로 순간 속의 영원 을 일깨운다. 영원을 희구하고 영원을 눈치채는 사람은 이미 큰소리로 외치며 주고 받은 말이 없다.

  고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산물이지요. ( 고운 말 에서)

 신동엽의 시 좋은 언어 가 있다.
  외치지 마세요/ 때는 와요/ 그 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저항의 구호보다 본질적으로 이 좋은 언어 고운 언어가 더 중요하고 심도 있다. 세례성사에 쓰이는 물의 의미는 과학자가 말하는 H쐝O와 다르다.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존재근원으로부터 오는 살아있는 원초적 언어로 시를 써야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언어를 다루는 시인은 사제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수도자라 할 수도 있다. 영원을 살고 살아있는 언어로 수도생활을 하는 이에게는 삶이 오히려 단순해진다.

  아름다움의 시작은 단순함임을/ 예수님께 다시 배우는/ 오늘이 기쁨이여 ( 단순하게 사는 법 에서)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어린이와 같이 돼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단순함의 경지이다. 그러나 수도자도 시인도 약하고 한계가 있는 인간 이다. 때때로 외롭고 상처받고 절망한다. 그러다가 다시 회개하게 된다.

  볼품없이 잊혀진 나를 억울해하면서 슬프디 슬픈 체념을 눈 아프게 울었습니다./ …내가 만든 자아의 성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느닷없이 솟구치는 새로운 물줄기 이 기쁨… (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에서)

 일찍이 공자도 이 대목을 지적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데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큰 사람이 아니랴.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아닌 종교들에 대하여」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리스도교는 유교ㆍ불교ㆍ힌두교ㆍ이슬람교 등 다른 모든 종교들 안에 있는 옳고 성스러운 것들을 존중한다.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보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화해했음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대화해야 한다 고 천명했다.

 이 수녀는 산문 「웃으며 즐기는 세계 종교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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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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