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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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성균관 명륜당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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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3일 김수환 추기경이 심산상을 수상했다. 이 상의 이름은 김창숙(1879∼1962)선생의 아호인 심산(심산)에서 유래했다. 심산 선생은 항일 독립투쟁과 반독재운동 그리고 민주통일운동에 전생애를 바쳤던 우리나라 유림의 대표적 어른이다. 그는 우리나라 유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

심산사상연구회는 이 대학의 교수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직되었다. 이 연구회는 심산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학술과 실천적 면에서 기여가 큰 인사들을 선정하여 시상해 왔다. 올해의 수상자는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다.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시상식이 끝난 후 성균관의 명륜당 앞뜰에서는 이 대학 총장의 주최로 리셉션이 열렸다.

5월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아래에서 진행된 리셉션에는 추기경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천주교회의 인사들과 우리나라 유학을 대변하는 분들이 고루 참석했다. 유학계의 유림들과 천주교의 인사들이 함께 모였다는 사실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시상식과 리셉션내내 유교와 천주교가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는 모습이 넘쳐났다.

우리나라 유학의 심장부는 성균관이다. 600여년의 전통을 가진 성균관은 고급 지식인을 양성해온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이곳은 우리 교회사와 무관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천주교회를 세운 이승훈은 1780년에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이곳을 드나들었다. 다산 정약용도 성균관에 재학하며 학문을 연찬한 바 있었다. 이곳에서 학문을 닦던 일부 젊은 지성들은 천주교라는 새로운 가르침을 궁구해 나갔다.
성균관의 명륜당은 성균관에 재학하던 유생들이 글을 배우고 익히던 곳이며 왕이 직접 유생을 시험하던 곳이다. 이곳 성균관 명륜당에서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도 글을 익혔다. 물론 더 많은 유생들이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히려는〔명륜〕 이곳에서 이상사회의 실현과 유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꿈을 키웠다.

그러기에 조선후기 사회에 있어서 성균관은 성리학의 정통성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보루가 되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직후부터 이를 경계해 왔다. 1791년과 1795년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합동하여 상소를 올려서 이단 인 천주교 신앙을 배격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도 성균관 유생들은 수업거부와 단식투쟁〔권당〕을 결행하면서까지 이단배척 을 주장했다. 명륜당에는 천주교 신앙을 거부하던 선비들의 열띤 함성이 가득찼었다. 바로 그 명륜당 앞뜰에서 추기경의 심산상 수상을 축하하는 리셉션이 열렸다.

공자는 살구나무단〔행단〕위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송나라 이후 중국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그 가르침이 행해지던 곳에 살구나무를 심었다. 우리나라는 유학의 한 갈래인 성리학을 수용하여 우리의 철학으로 정착시켰고 우리 고유 문화의 큰 줄기를 마련했다. 이 때 우리 선현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전수하는 성균관이나 향교 같은 곳에 살구나무[행목] 대신 은행나무[은행]를 심었다. 조선 성리학이 송명(송명)의 이학(이학)을 능가했듯이 은행나무는 살구나무보다 더욱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현재 서울 성균관의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나무를 비롯해서 고목이 된 은행나무 몇그루가 서있다. 성균관과 비등한 나이를 가진 이 은행나무는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목격한 증인이다. 이승훈이나 정약용은 이 은행나무 밑에서 자신의 꿈을 키웠다. 그 나뭇결에는 이단 처벌을 외치던 관학 유생들의 목소리가 배어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은행나무는 세월의 무상과 역사의 발전을 느끼며 김수환 추기경의 수상 축하식을 위해 그 넉넉한 그늘을 다시 만들어 주었다.

이 시상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유학계는 인간발전을 위한 교회의 공을 인정했다. 이 상은 심산 김창숙의 의기와 추기경 김수환의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민족의 자랑스런 전통을 다시 확인했다. 교회는 이 전통의 원천 가운데 하나였던 유학의 주요 가치들을 보듬고자 했다. 우리 유교와 천주교 그리고 시상자와 수상자 모두는 화이부동하는 군자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날 명륜당 앞뜰에는 화풍이 넘쳤다. 이 새로운 바람이 내처 불면 겨레가 하나되는 새 누리도 움틀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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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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