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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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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 정상회담이 6월 평양에서 개최된다는 남북간의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이 합의문은 1972년에 발표되었던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면면히 이어져 오던 대화 정신의 표출이다. 또한 이는 인류의 평화와 민족의 일치를 지향해온 역사의 전개방향에 부합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20세기 인류사의 스캔들 가운데 하나였던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한민족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개해온 지속적인 노력의 일부이다.

물론 이 합의문은 그 발표 시점과 합의형식에 있어서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정상이 서로 만난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한 정치적 성과이며 역사적 사건이다. 이 만남을 통해 우리 역사는 20세기의 낡은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민족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간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화해와 협력의 단계를 열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새로운 역사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족의 화해에 관해서 그동안 우리 교회는 지속적 관심을 가져왔다. 우리 교회는 1983년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족의 분단현실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반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하여 북한선교위원회가 발족해서 ‘통일’을 기원하며 이를 위한 투신에 착수했다. 우리 교회의 일각에서는 이미 1989년부터 민족의 화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고 종교 신앙인의 입장에서 화해 교육의 중요성을 천명한 바 있었다.

교회에서 제시했던 ‘화해’는 마음의 휴전선을 허물려는 작업이었고 정치적으로 오도되어 만신창이가 된 통일론이 새롭게 지향해야 할 방법과 목표를 동시에 포함한 말이었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1995년 서울대교구에서는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시켰고 ‘민족화해’는 남북한 사회에서 새로운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민족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기도했고 오늘의 신앙고백 가운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투신을 포함시켜 왔다. 이 견지에서 볼 때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발표는 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민족의 화해를 위한 원칙들을 다시금 확인해 보아야 한다.

먼저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우리는 상호간의 이질성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분단이라는 이질적 상황을 강요당해 왔다. 이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서 오늘의 남북한에는 둘로 나뉘어진 별개의 의식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하나가 아니라 각기 별개의 존재이다. 이 이질성을 직시하면서 대화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대화와 화해는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 사이에 진행되는 창조적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질성보다 더 큰 동질성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 민족은 오랜 기간동안 역사공동체를 이루어 왔고 동일한 언어공동체요 문화공동체였다. 비록 현재 남북은 진정한 의식공동체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동질적 요소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민족화해와 일치에 대한 궁극적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

둘째로 민족의 화해는 공생공존을 지향하면서 전개되어야 한다. 상호의 공존을 부인하면 그것은 진정한 화해나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공존을 통해서 인간성이 존중되고 발현되는 계기를 공동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공생과 공존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화해는 상호변화의 원칙을 통해서 확인되어야 한다. 화해는 일방적 선언이나 자기주장의 관철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화해는 상호대화와 양보의 과정에서 도출된다. 상호 자신이 소중히 생각해 오던 기존의 가치에 대한 재검토와 양보의 자세없이는 화해가 불가능하다. 자신의 변화에는 인색하면서 상대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화해에는 자기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며 기득권의 포기를 통한 자기 변화와 희생없이는 진정한 일치가 불가능하다.

셋째 민족의 화해는 민주적 방법에 의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남북간의 각종 합의나 남북정상회담은 민족화해의 중요한 계기임에 틀림없다. 이 합의과정의 비공개적 불가피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전개될 화해의 과정은 민주적 방법이 관철되어야 한다. 물론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개념의 다양성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반도 안에서 두개의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기층민의 여론이 정당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가 소수 정치인들의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민족통일과 화해에 관한 문제는 지난 상당기간 동안 소수의 정상배들에 의해서 정략에 이용당해 왔다. 이와 같은 사태에 제동을 걸고 민족의 화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의 여론이 개진될 수 있는 마당이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이후 지난 55년동안 갈라져 둘이 되었고 서로 다른 남이 되어 자기 소모적인 전쟁상태를 지속해 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착수하게 되었다. 갈라진 민족이 화해하여 하나가 된다는 사실은 하늘의 뜻이다. 이 화해를 통해서 우리는 민족안에서 진정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고 우리의 신앙은 성숙되어 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화해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바이다.

조 광(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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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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