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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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새 천년기는 생명·사랑의 공통문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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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성탄을 맞는다. 지금 온 인류는 2천년 맞이에 여념이 없다. 2천년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다. 이런 성탄을 맞는 모든 이에게 또 새천년에 걸쳐 지구와 천체에 살게 될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빈다. 성탄의 뜻은 아래 성서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말씀이) 참된 빛이었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요한 1 3―5 9) 하늘 중천의 천사들의 성탄 밤 노래는 더욱 감격적이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가 2 14)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루가 2 10)

우리나라의 지도급 인사 한 분이 새천년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면서 21세기만을 말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이 성탄에 새 천년을 꿈꾸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난 두 천년을 일별한다.

그리스도의 탄생 당시 로마 천하는 창과 칼로 통치되고 노예제도로 뒷받침됐다. 그러나 천하를 제압한 로마의 포악성도 식민지의 한 변방마을에 태어난 예수의 가르침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예수님의 탄생은 암흑의 세계를 비추는 빛이요 생명이며 사랑이며 평화와 기쁨의 메시지였다. 로마는 300여년에 걸친 야만인들의 침입과 방화 파괴 약탈 등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빛은 그들을 순화시켜 새천지를 도래케 했다. 두 번째 천년 초반기에는 문화의 세계를 도래케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럽 각지에 가톨릭의 절대적 후원으로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난 대학들이었다. 이런 대학들은 오늘 인류 문명의 원천들이다. 또 두 천년대에 나타난 수많은 수도회들은 인간의 심령에 깊은 평화와 기쁨을 선사했으며 문물을 꽃피웠다. 그러나 두 번째 천년 중반기의 종교분열은 30년간의 종교전쟁으로 유럽을 초토화했고 수많은 생명이 살상됐다. 그 후 근·현대에 각 방면에 유혈이 낭자한 정신적 물리적 분열은 꼬리를 물었다.

새천년을 맞아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킨다. 유럽통합(EU)은 이루어졌고 기존의 미합중국 남미 정상회의 외에도 최근에는 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성공 합중국형의 아프리카를 구상한다. 아시아에서는 아직 요원하다. 위대한 종교들과 철학의 발상지이며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에서 하나의 공동체 형성 없이는 세계의 하나도 불가능하다. 인류는 지금 ‘공통문화’ 형성의 필요성에 몰리고 있다. 지난 수세기간 식민지의 착취와 독재 때문에 인류를 이끌어 온 표어는 ‘사회정의’와 ‘인권’이었다. ‘공통문화’ 시대에는 ‘생명’과 ‘사랑’이 주요 테마다.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며 풍요롭게 하자는 데 모든 사람은 공감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이런 하나로의 역사진행은 예수님의 간절한 마지막 기도 ‘그들이 하나되게 하소서’ (요한 17 11)의 폭넓은 실현이다. 가톨릭은 인류의 이런 흐름에 그 세계성과 깊은 영성으로 큰 공헌을 할 것이다. 사실 지금 인류는 2천년을 맞아 예수의 성탄과 부활(주일의 연원은 예수의 부활이다)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새 천년에 전개될 ‘공통문화’ ‘생명문화’의 핵심은 소수가 누리는 특권들을 아래로 일반 서민들에게로 확산시켜 가는 것이다. 부족장이나 왕족과 귀족 장군들 종교인들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의 특권시대 그것에 부응하는 크고 작은 특권층은 사라지고 인류역사는 모든 사람이 그런 특권을 분유 참여하는 시대로 전진해 간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은 하느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떤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인간의 ‘공통소명(common vocation)’론이 제기됐다. 그것은 또한 각 사람의 참여(
artici
ation)에 근거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 사람 개개인은 주인임과 동시에 봉사자가 될 것이다. 이런 문화는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사랑하는 데서 성립된다. 그것은 성서 정신의 실현이다. 마더 데레사 수녀는 새 천년대 진입에 있어 이런 흐름에 대한 인류의 상징이다. 이런 문화 형성에는 어떤 중심이 요구된다. 저 유명한 고 인류학자 테이야르 신부는 그런 오메가 포인트를 그리스도로 보았다. 인간이 아무리 발전할지라도 영(靈)과 육(肉)의 갈등은 피할 길 없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없다. 이런 문화의 실현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새천년 중반기에나 이루어질 것이며 후반에 우주에까지 활동무대를 넓혀 가는 아주 새로운 인간 삶이 예상된다. 물질 문명만의 발전은 영의 허(虛)함을 더해간다. 여기에 종교의 큰 몫이 있다.

과학기술은 많은 공헌을 하면서도 인간성과 우주질서에 역행할 때 큰 재난을 몰아 올 수 있다. 사실 과학기술은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예컨대 핵 생화학무기 유전자변형 농산물 환경호르몬 등의 발생으로 그 한계를 드러낸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고조되고 있는 세계화 지구화는 일명 미국화라고도 한다. 그런 기술과 자본은 인류가 골고루 인간답게 사는 데 이바지하지 않으며 머지 않아 인류 양식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하나를 지향하는 인류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새천년의 원천답게 새역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에 대한 ‘새로운 사태’ 교서의 승리 즉 공산정권들의 붕괴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황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인류 세계 종교 지도자들의 두 번에 걸친 기도모임이다. 이런 모임들은 인류 공통문화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또 다른 하나의 길조(吉兆)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화해선언이다.

교회는 지난 두 천년대에 못지 않게 삼 천년대의 인류문화에 공헌해야 하며 그 본래 사명인 인류구원 선교에 정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강생하신 것은 인간구원 때문이었다. 즉 선교 때문이었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그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가 그 핵심일 수밖에 없다. 아시아 시노드를 리드했다는 일본대표단은 문화를 강조했다. 이 점은 40여년 지기인 동경의 사라야나기(白柳) 추기경과의 대화에서 확인됐다. 그것은 일본에서는 하도 선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유명작가 평신도가 말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어떤 대학 연구소에서 연구케 한 결과였다고 했다. 또 사라야나기 추기경은 일본교회는 지난 수십년 동안 막대한 지출로 사회사업을 했지만 선교와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물론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기실 문화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생활양태이다. 직접 선교가 잘 되는 곳에서는 직접 선교에 뛰어들어야 한다. 1980년대에 있었던 200주년 사목회의는 ‘민족복음화’와 ‘민족문화창달’을 표방했다. 그것은 전국에서 교회에 관련된 풀뿌리로부터 올라온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의 수렴이었다. 약 7∼8년 일이었다. 개신교의 어떤 인사가 천주교는 사회사업에 뛰어나고 개신교는 말씀의 선포에 뛰어나다고 해 충격을 받았다. 근년에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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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199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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