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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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우리시대의 성령(12)

성령, 주님 따르도록 돕는 협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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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三位一體) 안에서의 성령

“예수님께서 독자적으로 ‘우리’라는 어휘를 사용할 때(요한 14, 23; 17, 21), 그것은 아버지와 당신 자신만을 가리킨다. 성령은 우리, 즉 아버지와 아드님에게서 발(發)하시며 어떤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두 위격 안에 계신 한 위격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드님 사이의 통교의 최종적 행동이다. 아버지와 아드님의 통교가 하느님의 내면생활에서 밖으로 전달되는 것도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실상 교회는 이 세 위격의 통교(通交)와 관련하여 정의(定義)된다. 예수님과 그리스도 신자와의 동일성은 아드님과 그리스도 신자 안에 모두 현존(現存)하시는 성령이 동일하다는 사실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Leon Joseph Suenens)

하느님을 계시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신앙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성령을 알 수 있는데 성령께서 영감을 주신 성경 안에서, 전통 안에서, 교회의 교도권 안에서, 성사의 전례 안에서 말씀과 상징을 통해, 기도 안에서, 교회를 이루는 은사와 직무 안에서, 사도적 삶과 선교적 삶의 표징들 안에서, 성인들의 증거 안에서 성령을 만날 수 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이시며, 삼위일체의 내적 ‘생명’에서나 세상을 위한 당신 사랑의 선물에서나 성부와 성자와 분리되실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신앙은 생명을 주시며, 동일한 본질이시고, 나누어질 수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세 위격의 구별도 또한 고백한다. 성부께서 당신의 ‘말씀’을 보내실 때 언제나 당신의 ‘성령’도 보내신다.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고 함께 파견되신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볼 수 있는 모습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지만,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실 것을 예고하고 약속하실 때 그분을 ‘파라클리토’(Paracletos)라고 부르는데, 이는 ‘곁으로 불려 온 분’(ad-vocatus) 곧 변호자라는 뜻이다(요한 14, 16. 26; 15, 26; 16, 7). ‘파라클리토’는 일반적으로 위로자, 협조자 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첫 위로자이시다. 주님께서 친히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신다.

삼위 일체 안에서의 성령의 역할은 완벽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는데, 곧 성령은 성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길을 우리가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안내자이고 협조자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화되신 하느님의 말씀의 결정체라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파라클리토가 한다고 할 때, 삼위일체의 교의는 분명해진다. 이것을 제외하는 경우 어떤 성령의 역사도, 그것은 비 그리스도적인 것이다.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파라클리토 성령의 안내하심이 의미가 있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우리를 진리에로, 그리고 생명에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령의 위치에 대해서 하느님이라는 호칭은 부여하지 않았지만 삼위(三位)적 정식은 일찍이 성서 안에 나타나있다.(마태28, 19)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 삼위의 관계를 심리학적 삼위일체론’(心理學的 三位一體論, De Trinitate psychologica)으로 우리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 본질의 단일성과 세 위격들의 구별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추(類推)를 인간 영혼(anima) 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기억(mens), 인식(notitia), 사랑(amor)이 영혼의 세 가지 속성으로 파악된다. 아우구스티노의 심리학적 해설에 근거하면 성부 하느님은 기억에 관계되고, 성자 하느님은 지성에 관계되며, 성령 하느님은 의지 및 사랑에 관계된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실제로 구별되면서 하느님 본질과 하나가 되는 자립적 관계(自立的 關係)라고 규정되고 있다.

아버지 하느님은 모든 존재 사물이 흘러나오는 원천 그 자체이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엮어져 있고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꿰뚫어 알고 계시는 그런 분으로서 기억이라고 하는 의미로 표현할 수 있다. 성자(聖子)는 지성과 관련 되는데 하느님 뜻을 올바로 알고 그것을 보여주는 의미의 지성인 것이다.

성령은 근본적으로 의지이며 사랑이다. 아들 하느님이 지성으로서 하느님을 안다고 할 때, 지성으로 알게 된 것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사랑인 것이다. 사랑의 작용은 분석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이어주는 끈이면서 동시에, 성자가 성부를 온전히 알고 따르는 데 유용한 하나의 에너지인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발(發)하고 아들 하느님에게서도 발한다. 그러므로 구약은 성부의 시대이고, 신약은 성자의 시대이며, 교회는 성령의 시대이다라는 구분 또한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각 시대의 성령의 활동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은 고유한 위격이시면서도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기 때문에 그 성령의 위격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도 지금 우리와 함께 현존하고 계신다. 성령론은 반드시 삼위일체 신앙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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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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