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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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형 폐지되는 그날까지] 3. 선동열 프로야구 삼성 감독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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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사실 나는 자연스럽게 “저런 죽일 놈이 있나”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화가 났다. 그러면서 “저런 놈들이 있으니 사형제도가 있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단순한 생각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졌고 지금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폐지 소위원회를 통해 내가 사형제도 폐지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부터이다. 그동안 감정적으로 ‘공공의 적’ ‘흉악 범죄자’란 인간들은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땅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여겼던 발상이 얼마나 편협 되고 잘못된 것인지를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사형제도 폐지 홍보대사 위촉을 받고 지금까지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형수와 사형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운동선수로는 최고의 자리에 서 보았지만 시합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던 터라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라 확신했다. 하느님께서 나를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이끄는 더없는 기회였다.

정말 다른 세상이 보였다. 지금까지 그렇게 ‘나쁜 놈, 죽일 놈’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흉악범죄자들의 이면을 보게 됐고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생각을 달리하자 과연 사형제도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흉악범죄자들의 경우 대부분 고아로 성장했거나, 가정형편이 매우 열악한 경우가 많다. ‘세상 탓’이라 하기엔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너무나 황폐하고 돈이 곧 최고라는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단 한 번도 다른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멸시와 업신여김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자기를 낳아준 부모들조차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 범죄자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 내가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면 과연 오늘의 ‘선동열’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암담하지만 솔직히 그러하지 못했을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할 뿐 아마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삶의 좌절감을 맛보며 주저앉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이들 사형수와 흉악범죄자들도 인권이 있고, 우리와 똑같은 생명을 갖고 태어났다. 복음성가 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형수들에겐 이런 기본적인 선택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분명 자신들이 지은 죗값은 치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사형제도만이 최선인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아무리 커다란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해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살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이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면 이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국가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국가 내란죄 등의 죄를 뒤집어 씌워 그동안 얼마나 무고한 이 나라 아들들이 죽었는지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희대의 살인마’라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영철을 기억할 것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살인자였다. 그 유영철이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그것도 3명이나 잃은 고정원씨가 극악무도한 살인자 유영철을 용서하고 심지어 아들로 삼고 싶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가톨릭 신문에서 보았다.

도저히 인간의 잣대와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분이 신앙의 힘으로 이러한 놀라운 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 분이라고 왜 유영철이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 않았겠는가! 우리 속담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비록 유영철의 죄가 도저히 씻을 수 없는 범죄였다 할지라도 살아서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에겐 더 가혹하고 힘든 형벌이 아닐까.

가톨릭을 비롯한 여러 종교단체들은 사형제를 종신형제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사랑과 생명이 꽃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비단 종교인들만의 ‘희망사항’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세상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라 생각한다.

이런 나의 이야기에 대해 분명 어떤 이들은 “직접 당해보지도 않았다고 성인군자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에게 되묻고 싶다. 살인자라 해서 같은 방법으로 처형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무고하게 죽은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이 정말 사형제도밖에 없는지. 살인자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고 회개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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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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