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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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사형, 폐지되는 그날까지] 4.홍근수 목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공동대표

제도적 살인은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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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론은 지금까지 널리 펼쳐져 왔다. 그러나 주로 형사 정책의 인도적인 방향에서 전개되어 왔다.

생명을 존중하는 기독교에서는 독특한 사형제 폐지론을 독특한 인간 창조론의 견지에서 전개해 왔다. 그것은 조물주이신 하나님이 최초의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서 지으셨다(창세기 1장 27절 이하)고 하신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거룩한 존재인 하나님께서 ‘인간 생명의 저자’라는 것이다.

사형제도란 국가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뜻하는데, 조물주인 하나님이 인간 생명의 주인인데 인간과 제도-국가 역시 인간의 제도이다-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재판에 오류가 있고 오판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는 경우 이의 회복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든지, 사형이란 극형이 범죄 예방의 효과가 없다든지,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유엔의 세계 인권선언 그리고 유엔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반한다든지, 사형제도 자체가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라든지 등의 논리는 사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인간 생명의 저자이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성서 주장에서 보면 분명 이차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사형제도를 존치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 생명권의 귀속 문제를 생각할 때 부당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 교회가 그동안 전개해온 사형폐지 관련 성서 작업을 깡그리 무시한 채, 한 보수 기독교단체에서 “인간의 생명존중을 위해서는 사형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며 사형폐지론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입장은 성서적이라기보다는 궤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적으로 보면 제거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성서 신앙적 입장에서는 그 누구의 생명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흉악범이라고 해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으로서, 개인은 물론 국가도 박탈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성경에 사형을 인정하셨기에 사형제도는 성서적이다’는 주장은 문자주의적 이해이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성경 안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모순된 여러 기술이 부지기수이다.

성서에서 사형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성서 안에서의 사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것이 핵심이지 사형 자체가 궁극적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은 온갖 부정과 부패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으며,…서로 헐뜯고 난폭하고 거만하며 제 자랑만하고 악한 일을 꾀하고 분별력도 자비도 없습니다. 그런 모양으로 사는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사형)”고 말하고 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사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모두가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인간의 죄성, 타락상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용서되고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받았다는 고백이 있기에 기독교가 존립하는 것이다.

로마 제국에 의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보면서도, 사형은 성서적이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것인지 묵상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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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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