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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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38) 내 눈 속의 들보

교회 구조적 문제로 상처받고 등 돌린 신자들
냉담신자 회두 위해 안간힘 쓰고 있지만
한 번 떠난 이들 마음 돌리기는 어려워
권위주의적 자세와 성찰 부족이 문제 뿌리
서로 존중·격려하는 공동체 구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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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임에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 행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일상화되었고, 통계에 따르면 청년층(20~35세) 미사 참례율은 7에 불과한 실정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 41)

주님의 계명과 말씀을 세상에 전하고 선포하는 교회는 스스로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을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자신이 말하는 진리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의 사소한 잘못들은 큰 소리로 책망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큰 흠들에는 눈을 감으려는 마음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예외일 수 있을까?



무엇이 교회를 위한 길인가

수도권 교구 한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거쳐 오랫동안 단장으로 활동해온 A씨는 요즘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자칭타칭 ‘열성신자’로 교회 활동을 하느님이 주시는 훈장으로 여겨온 그는 단원이 줄어 해체 직전에 있던 쁘레시디움을 맡아 단원수를 7~8명으로 늘릴 만큼 혼신의 힘을 쏟았다.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단원들과의 친목은 물론 외부 봉사나 활동에도 나름 적잖은 공을 들였다.

A단장은 특히 교회 내 신심단체 중 유일하게 ‘교본’을 갖고 있는 레지오에 대한 자부심과 남다른 십자가를 강조해왔다. 레지오 활동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교본을 찾아 철저히 따랐고, 그래도 의구심이 남으면 상급 평의회에 문의해 답변을 받아서라도 활동방침을 정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제 주머니 털어가며 활동에 열심인 A단장이 어느 때부터 맞닥뜨리게 된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자신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레지오 마리애 교본에는 레지오 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금전도 주고받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지오도 교회 구성원이다 보니 금전 문제를 놓고 본당 내 타 단체나 사목회와도 종종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은 본당 사제 축일을 앞두고 본당 사목회에서 일방적으로 물적 예물로 ‘레지오 단원 1인당 000원’이라는 공지를 한 일이 있었다.

A단장은 레지오 활동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생각에다, 형편이 어려운 단원들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1인당 얼마씩을 공개적으로 갹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본당 카페 게시판에 의견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그저 다른 교우들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순수한 생각에서였다.

이튿날 카페 게시판을 다시 찾은 A단장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글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꾸리아 단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본당 내에서 불미스런 행동으로 비춰져서는 안되고, 오래전부터 관례인데 사목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 텐데….”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짓던 꾸리아 단장은 A단장의 해명을 듣기도 전에 간접적으로 단장직을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A단장은 자신의 뜻은 문제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본당 신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것이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결국은 동고동락했던 단원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단장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사랑했고 열과 성을 바쳐 온 교회가, 2000년을 넘게 살아온 교회가 이런 모습일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A단장은 근근이 주일미사만 드릴 뿐 본당 내에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무슨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하게 됐다. 그토록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던 미사는 무거운 십자가가 되고 말았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A단장의 물음에 깊은 한숨이 묻어났다.



누가 용서를 청해야 할까

B씨의 고백이 이어졌다.

“도저히…, 털어놓을 용기를 낼 수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부를 수조차 없어…, 감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교회 내 기관에서 일해 온 지 20년이 가까워져 오는 B씨,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것은 같이 일하던 동료 C씨의 일탈이었다. 직무상 팀워크를 필요로 하고 외부인과의 접촉도 많은 부서에 같이 근무하던 B와 C씨는 술자리를 할 기회도 잦았다. 빤한 급여에도 불구하고 씀씀이가 ‘시원해’ 부서원들은 물론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C씨가 공금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B씨는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C씨와 자주 시간을 함께 보냈던 자신도 그의 일탈에 책임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태는 C씨 혼자서 수습하기 힘든 지경에 처해있었다.

“어쩔 생각이야?”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지만, 오히려 사태는 꼬이기 시작했다. 직장 안에서 B씨를 둘러싼 나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확인할 길 없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B씨를 괴롭혔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그 소문 대부분이 C씨의 입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에 분노까지 일었다.

“용기를 내기까지 정말 많은 갈등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더 많은 이들이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말에….”

결국 C씨가 조용히 그만두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미 B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를 남긴 뒤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상사는 물론 주위로부터 늘 따가운 시선이 따라다녔다.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를 우울증이라는 구렁으로 밀어 넣었다. 남몰래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B씨는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말 기쁘게 일해왔는데…. 갈수록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만둬야 할까요.”

B씨와 같은 일을 겪은 이들을 격려하기는커녕 품어 안지 못하는 교회 내 조직이나 기관은 의외로 많다.

“저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저 자신, 아니면 교회….”



내 눈 속의 들보 왜 보지 못하는가

이미 한국교회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임에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 행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청년들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이제 ‘교회 안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가톨릭신문  20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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