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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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르포] 희망의 여정 시작하는 울릉도 천부본당 (상)

‘새 희망’ 넘실대는 섬마을 신앙공동체
신자들 맨손으로 직접 쌓아올린 신앙의 터전
코끼리바위·송곳봉 등 뛰어난 인근 경관 ‘자랑’
50주년 앞두고 성당 재건축·기도쉼터 조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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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일주일 만에 열린 항구는 설렘과 희망의 발걸음들로 분주했다. 가슴 가득 저마다의 희망을 채운 사람들로 붐비는 부두, 매번 뱃길이 열릴 때마다 한반도 동쪽 신비의 섬 울릉도는 새롭게 깨어난다.

사람들이 꿈꾸는 희망 속에 희망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는 곳, 울릉도.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켜는 울릉도 신앙공동체가 들려주는 희망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희망을 심다 - 첫걸음의 기쁨

“이렇게 콘크리트를 섞다 보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나는군요. 그때는 정말 살기 쉽지 않았는데….”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성당 담장을 손보기 위해 모인 이들은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성당은 오롯이 믿음과 정성으로 성당을 지었던 나이든 청년(?)들이 있었기에 녹록치 않은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듯하다.

“산비탈 밭이었던 자리였어요. 우리 어머니들이 배가 바닷가에 부려놓은 모래를 져나르시면 우리들은 지게로 돌을 날랐지요.”

자신이 일일이 져나른 돌을 쌓아 만든 성당을 자랑스럽게 가리키는 남재권(바오로·77·울릉도 천부본당)씨의 얼굴에서는 지금도 뿌듯해하는 마음이 읽혔다.


 
▲ 천부본당 주임 나기정 신부(왼쪽)와 신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변한 기계(?)라고 해봐야 리어카가 전부였던 1960년대 말, 신자들은 맨손으로 산을 깎고 축대를 쌓으며 신앙의 터전을 쌓아올렸다. 우리나라 성당 가운데 가장 동쪽 끝에 자리한 대구대교구 울릉도 천부성당(주임 나기정 신부)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태종 때 섬 거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이 실시된 이후 1882년 울릉도 개척령으로 개척민이 제일 처음 와 닿은 마을. 섬에 들어온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나무를 베어낸 곳으로만 동그랗게 하늘이 보여 천부(天府)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에 본격적으로 신앙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5년 현석문 가롤로 성인 막내 동생의 후손 현재룡(비오)씨가 천부리에 이주해 전교활동을 나서면서부터였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꿋꿋이 신앙을 이어오던 천부공소는 오스트리아교회 신자들의 도움으로 부지를 마련하고 1966년 1월 1일 울릉도 도동본당에서 분리돼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신앙이라는 게 참 오묘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눈떠가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되거든요.”

덜컥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버린 홍연호(베네딕토·76) 회장은 지금도 본당 일이라면 두 팔을 걷고 나선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라면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다.

“이 나이 먹도록 처음 하는 일이 끊임없이 생기고 그로 인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 1963년 도동성당 축성차 울릉도를 방문한 서정길 대주교를 신자들이 맞이하는 모습.
 
 
희망을 나누다 - 신앙의 기쁨

존재도 잊혀진, 아니 한 번도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는 울릉도 신앙공동체의 면면은 신앙의 기쁨을 그대로 보여준다.

1960∼70년대 섬 인구가 3만 명을 오르내릴 당시만 하더라도 울릉도에는 도동과 천부를 비롯해 저동, 석포, 죽암, 나리, 추산, 평리, 현포, 태하, 학포, 구암, 남양, 통구미, 사동 등 곳곳에 16개의 신앙공동체가 있었다. 무속신앙을 지니고 있던 이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가톨릭교회에 들어오면서 복음화율은 한때 3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지금도 울릉도에서는 다른 섬과는 달리 무속신앙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처럼 해안도로가 뚫리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에는 도동본당에서 소유하고 있던 5톤 남짓한 동력선 ‘라파엘호’가 신자들의 발이 되어주었다. 그나마 파도나 날씨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하는 날이면 신자들은 꼬박 몇 시간 산길을 걸어 미사를 드리러 가는 게 예사였다.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그땐 힘들었지만 교회 일을 하는 보람이 적지 않았지요.”(홍연호·베네딕토·76)

하지만 인구가 노령화되고 젊은이들이 교육과 생계 문제 등으로 육지로 빠져나가면서 1만 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을 맴돌고 있는 근래에는 신자 수도 자연적으로 줄어 복음화율이 10 정도에 머물고 있다.

본당 주임 나기정 신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희망을 나누면서 누렸던 기쁨이 지금도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 되고 있음을 본다”면서 “이러한 신앙의 유산을 불쏘시개 삼아 신앙의 지평을 넓혀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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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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