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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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영혼의 건강 회복하고 하느님ㆍ교회와 다시 화해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와 고백해야 할 죄의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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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해성사에서 죄 고백은 사제인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하는 것이다.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죄를 용서하는 당신의 고유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위임된 사죄권은 다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계승됐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사죄권을 주시면서 죄인들을 교회와 화해시키는 권한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모든 지체, 무엇보다도 대죄를 지어 세례 때 받은 은총을 잃고 교회의 친교에 손상을 입힌 사람들을 위해 고해성사를 세우신 것이다. 고해성사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은총을 회복할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준다.

 신자들은 고해소에 들어가기 전 시간을 갖고 지난번 고해성사 후 지은 죄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내는 `성찰`을 해야 한다. 성찰 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치는 `통회`가 필요하다.

 통회는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의 고통이자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인데 이는 고백자의 가장 중요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완전하게 통회하지 못했다고 고해성사 보는 것을 자꾸 미루는 신자들이 있는데, 불완전하게 통회했다 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죄를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백은 고해성사의 핵심이다. 고백할 때는 성찰을 통해 알아낸 죄를 모두 열거해야 한다. 고백을 마치면 사제의 보속이 이어진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로 인한 모든 폐해를 회복시키진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죄의 흔적이 남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죄를 갚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보속이다. 보속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해성사가 무효가 되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통회한 사람이라면 보속을 통해 죄를 갚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는 교회와 친교를 회복하는 고백자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은 죄 때문에 손상을 입은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고해성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해성사를 받는 신자들은 하느님께 끼친 모욕에 대한 용서를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받으며, 동시에 범죄로 상처를 입혔던 교회, 사랑과 모범과 기도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노력하는 교회와 다시 화해하는 것이다."

 
 

▲ 렘브란트 작 `돌아온 탕자`, 1669년, 유화, 러시아 에르미타쥬 박물관.
 
 ▨고백해야 할 죄의 범위 

 대부분 신자들은 고해소에 들어가기 전 고민을 한다. 어디까지가 죄이고, 어디까지가 죄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고해소에서 고백해야 하는 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십계명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성찰하고 어긴 부분이 있다면 고해를 해야 한다"면서 "소죄는 미사에 참례해 참회하고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대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죄는 인간적 나약함, 성격상의 문제 등으로 쉽게 범하게 되는 죄를 말한다. 소죄는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를 박탈하진 않지만 소죄를 계속 짓고도 뉘우치지 않으면 점점 대죄를 짓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살인이나 간통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자신이 그 죄의 중대성을 의식하며, 자유의지에 의해 죄를 지었을 때 대죄가 된다. 십계명을 의식하면서 고의로 어겼을 때는 대죄가 된다. 대죄를 지었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육체적ㆍ정신적 문제로 인해 지은 대죄를 다 기억하지 못해 고백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죄는 간접적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나중에 생각이 나면 다시 고백해야 한다.

 고백을 하기 전 양심성찰을 할 때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찰을 잘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사람마다 짓는 죄도 다양하고 양심의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몇 가지 잣대로 죄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죄를 짓고도 죄라고 생각해 고백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성찰을 해도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마음속에 있는 나쁜 감정을 살펴보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원인을 찾아본 후 나를 빗나가게 하는 것들을 묵상해보자. 또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이 내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실지 묵상해보면 지은 죄가 조금은 생각날 것이다.

 고백자는 고해를 마치면서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말을 한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는 말 그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죄를 뜻하지만 일부러 사소한 죄만을 고백하고 나머지 죄들은 `알아내지 못한 죄`라는 핑계로 뭉뚱그려 용서받으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손 신부는 "죄를 인식했으면서도 일부러 고백하지 않으면 모고해(冒告解)가 돼 또 죄를 짓게 된다"면서 "모고해를 한 사람은 다시 온전히 고해를 해야 죄가 사해지므로 처음부터 성실하게 고백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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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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