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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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성화의 날 특집] 2014년 한국, 사제로서의 삶

“사제는 양떼와 함께할 때 비로소 성화되지요”
신학생 때부터 매일 아침 성체조배 … 성경과 함께 하루 시작
하루 6~9 가정 방문해 이야기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기억
“사제가 되고자 했던 때의 순수한 열정 되찾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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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수호성인 성 요한 비안네 신부는 날마다 10시간이 넘도록 고해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푸스데이 창설자 호세 마리아 신부는 스페인 내전 중에도 신자들을 찾아 다녔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는 평생 3만 1418㎞를 걸어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다.

세 사제는 늘 복음과 양떼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양들을 구원하기 위해 갔던 길을 그들 역시 묵묵하게 따랐다. 그 발걸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27일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묵상하는 이 날은 지난 1995년 교황청 성직자성이 제정한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하다. 사제들이 정체성과 사명에 걸맞은 성성을 재발견하도록 독려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대의 사제들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쾌락주의 등 시대적 징표를 무시한 수많은 유혹에 도전을 받는다. 때문에 성화를 위한 사제들의 노력은 특별한 날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일이 사제 성화의 날이고 그리스도를 향한 구도의 시간이다.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매시간마다, 매일 같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완덕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한 사제의 하루를 함께 했다.



사제생활의 시작과 끝, 복음

새벽미사가 없는 금요일 이른 아침, 서울 포이동성당은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 했다. 사제는 침묵 가운데 한 발, 한 발 제대의 십자고상으로 다가갔다. 커다란 십자가 아래 멈춰 선 사제는 한없이 작아 보였다. 한 본당의 주임사제라는 직책도, 30년 넘게 사제로서 살아온 세월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포이동본당 구요비 주임신부의 아침은 한결 같다. 신학생 시절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일 주님과의 독대를 청했다. 대화 주제는 성경이다. 당일이나 주일 독서와 복음을 읽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되새기며 묵상한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한 시간이 꼬박 지나도록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 사이 신부의 하루를 동행한다고 나선 기자는 온몸이 뒤틀린다. 참을성 없는 기자가 성당의 적막을 깨도 신부는 ‘잠심(潛心)’을 유지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선배 신학생들에게 늘 성경을 음미하고 곁에 둬야 한다고 들었어요. 강론과 교리를 통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성체조배를 끝낸 후에도 구 신부는 여전히 말씀에 머물렀다. 프라도 사제회(프라도회:앙투안 슈브리에 신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프랑스 리용에서 1860년 설립한 재속 사제회다. 한국 프라도 사제회는 1975년 출발했다-가톨릭대사전 참조) 회원인 그는 복음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노트에 기록하는 프라도회의 복음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렇게 쌓인 노트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프라도회 창설자 앙투안 슈브리에 신부가 20년 동안 복음 연구를 하면서 2만 페이지를 기록했다고 하니, 구 신부의 노트 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5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서예는 또 다른 구도 방법이다. 정성스레 먹을 갈고 글자 크기에 따라 화선지를 접으며 선택한 성경 구절을 묵상한다. 먹 묻은 붓이 화선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구 신부 마음에도 말씀이 뚜렷하게 새겨진다. 기자가 찾아간 13일은 “엘리야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13)는 구절을 뽑았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은신처를 찾아 동굴로 숨어 들어간 엘리야 예언자를 부르시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세상의 양떼 가운데로 가서 하느님의 사업을 하도록 이끄시지요.”

아침 내내 이 구절을 마음에 담은 구 신부는 엘리야 예언자처럼 사제관을 나섰다. 그리고 양떼가 있는 곳으로 찾아 갔다.
 
▲ 09:00 서예 “엘리야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31) 매일 아침 성체조배와 프라도 사제회 복음 연구를 하는 구요비 신부는 서예로도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엘리야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제일 먼저 찾아 간 양떼들은 성당 내 니꼴라오 어린이집 어린이들이다. 한 달에 한 번 봉헌되는 미사를 주례하며 어린이들과 만남을 이어왔다. 어린이집 미사는 최근 가정방문을 진행하면서 관할구역 내에 많은 젊은 부부가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구 신부가 관심을 갖는 사목활동 중 하나다.

“아이들이 성당 유치원에 다니면 자연스럽게 부모님들도 종교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예비신자 교리를 받겠다고 찾아오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선생님들이 세례를 받았어요.”

미사가 끝나면 아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지난 번에는 아이들에게 안수를 받았고, 이번에는 포옹을 나눴다. “신부님 사랑해요”라는 아이들의 고백에 힘을 얻은 구 신부는 오후부터 본격적인 가정방문을 시작했다. 청계산 아래쪽 식당가에서 사업을 하는 신자들과 내곡동 새 아파트에 입주한 신자들이 방문 대상이었다. 그는 가정방문 내내 신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하나라도 놓칠 새라 챙겨간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하고, 기도 중에 기억했다. 말수가 적은 신자들에게는 이야기꾼이 되어 하나 하나 물어보고 신자들에 대해 알아갔다. 가정방문 끝에는 꼭 사진을 찍어 성당 한 쪽에 전시하고 앨범을 만들어, 만난 신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런 방문이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일주일에 3일 밤낮없이 6~9개 가정을 돌아다니다 보면 녹초가 된다. 지난 겨울 독감에 걸렸을 때는 가정방문을 잠시 멈출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가정방문에 나섰다.

본당 총구역 총무 최화선(요셉피나·52)씨는 “사목이 체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구요비 신부님을 보면서 깨달았다”며 “가정방문을 하시고 대부분의 신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니 본당 신자 모두가 감동했다”고 고백했다.

강남구 포이동·서초구 내곡동·염곡동·신원동·원지동·양재2동 등 서울대교



가톨릭신문  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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