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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성화의 날] “서품 때의 첫 마음과 현재의 마음” (정순택 주교)

하느님 축복의 ‘중개자’,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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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5일 주교서품식 후 가르멜회 재속회 회원들과 함께한 정순택 주교. 평화신문 자료사진
 
1992년 7월 16일, 가르멜수도회로서는 수도회 자체 대축일인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당시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인천 가르멜 수도원 성당에서 저의 사제 수품 미사를 집전해 주신 것이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로부터 다시 10년 전, 제가 일반 대학 3학년 재학 중에 ‘하느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시고 계심’을 어느 계기로 절절히 깨닫는 순간 그 사랑에 저를 온전히 봉헌하고 싶은 맘을 뜨겁게 느낀 것이 저의 사제 성소의 첫 순간이었는데, 그로부터 차츰 사제 성소는 저에게는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느님 축복의 중개자’로 인식되었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의 중개자이므로 저의 사제직 이해가 나름 틀리지 않은 이해로 생각되는데, 그런 저의 사제직 이해에 대해 저 스스로 심리학적 분석(?)을 해 보면, 아마도 자랄 때 가족 안에서 형제들 사이의 관계와도 무관하지는 않지 않나 싶습니다.

가정에서는 위로 두 살 터울의 누나와 아래로 세 살 터울의 여동생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몇 살 터울의 두 자매가 있는 여느 가정에서 그러하듯이 두 자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있게 마련이었는데, 그럴 때는 중간에 위치한 제가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 ‘화해의 중개자’ 역할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랄 때의 그러한 배경이 저의 사제직 이해 (‘하늘과 땅을 잇는 축복의 중개자’)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제 혼자만의 생각의 비약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사제로서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전달해 주는 일’ 곧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행복해하면 저도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축복을 땅으로 전달해 드리는 사제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저의 첫 마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사제품을 받은 지 어느덧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의 생활 환경도 바뀌었고 교회 안에서의 제 역할에도 큰 변화가 새로 생겼습니다. 조용히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제가 교구 안의 소임을 맡게 되면서 매일 서울 한복판 ‘명동’으로 출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빨래는 물론, 간단한 바느질과 다림질까지 각자 손수 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젠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말끔히 세탁해서 다려주시는 ‘봉사를 입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설거지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가만히 계셔 주시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여러 방문객이 함께 제 집무실에 오시는 경우 저도 의자 한두 개쯤 나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데,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도록 ‘권고’ 받습니다. 지금은 그런 ‘봉사를 받는 것’이 어색하지만, 어쩌면 ‘봉사를 받는 것’에 차츰 익숙해질까 봐 그런 저 자신을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바뀐 지금 제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은, 교구장님을 도와 우리 교구의 신부님들께서 각자 맡은 자리에서 사목을 잘하실 수 있도록 뒤에서 힘껏 밀어드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양들과 직접 만나 사목하시는 일선 신부님들께서 더욱 ‘양 냄새 나는 목자’ 되시고, 더욱 기쁘고 행복하고 힘차게 사목하실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제 몫이라 생각됩니다. 이 바뀐 환경에서, 제가 맡은 이 새로운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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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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