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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주일에 만난 사람/ 페루 선교 후 시골본당 사목하는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꺼져가던 100년 공동체에 신앙의 불씨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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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식 신부가 퇴강성당 앞에 서서 본당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2003년 7월, 박재식(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신부는 지구 반대편 페루에 도착했다. 수도 리마 빈민가에 있는 한 본당이 그의 사목지였다. 3년여 동안 리마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박 신부는 2007년, 페루 쿠스코주 작은 마을에 있는 본당에 부임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난방시설도 없는, 현대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었다. 본당에는 70년 동안 사제가 없었다. 주민들은 “국가와 교회로부터 잊히고 버림받은 곳”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잊힌 마을, 가장 가난한 마을에 박 신부가 함께 살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박 신부의 노력으로 전기가 들어와 집집마다 밤에 불을 밝힐 수 있었고, 파출소도 들어섰다. 지금은 매년 많은 사람이 마을을 찾아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120여 명, 신앙의 맥만 유지

2013년 9월, 박 신부는 10년간의 해외선교 사목을 마치고 안동교구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사벌퇴강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115년 전 형성된 천주교 공동체를 모태로 하는 사벌퇴강본당은 1930년대 신자가 1000명이 넘었지만 지속적으로 신자가 줄어들어 지금은 120여 명이 신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페루에서 그랬던 것처럼 박 신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던 ‘신앙의 고향’에 또 한 번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성당에 지난 1년 동안 도시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귀촌을 한 가족도 있고 졸업여행으로 성당을 찾은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10일 퇴강성당에서 만난 박 신부는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선교사’라고 하면 대개 해외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사제, 수도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페루에서 10년 동안 ‘해외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본당 주임신부’가 된 그는 왜 여전히 선교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을까.

“선교사는 지역 주민들이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이에요.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 마음 안에서 풍요롭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죠.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바로 선교사에요. 모든 본당 사제들도 선교사라고 할 수 있어요.”

퇴강사벌본당에 부임한 박 신부는 ‘평생을 하느님과 함께했지만 지금은 잊힌 존재가 된 신자들이 어떻게 하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어르신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생각한 방법이 도시 신자들과 어르신들의 만남이었다. 순례객들이 찾아오면 본당 신자들과 함께하며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 신부는 “우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을에 활기 불어넣어

지난해 12월에는 졸업을 앞둔 수원 소화초등학교 학생 20명을 초대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1박 2일’을 진행했다. 본당 어르신들에게는 아이들의 민박을 부탁했다. 민박을 해본 적이 없는 어르신들은 “부담스럽다”면서 싫은 기색을 비쳤지만 박 신부는 어르신들을 설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학생들은 집에 도착해 어르신들이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말벗이 돼주며 어르신들 마음을 녹였다. 조용하던 마을에 모처럼 웃음소리가 들렸다.

박 신부는 이달 초 10명의 할머니와 함께 제주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박 신부는 운전기사, 안내인 역할을 하며 성지를 안내하고 어르신들이 좀처럼 가 볼 기회가 없는 뷔페에 모시고 가기도 했다.



본당 노령화에 대처하는 법

여유로워 보이는 본당에서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사목 활동을 하고 있는 박 신부는 요즘 ‘시골본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있다. 사벌퇴강본당은 신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그나마 있는 신자도 대부분 어르신이다. 이는 다른 시골본당들도 똑같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신자들 평균 나이가 70대예요. 10~20년이 지나면 몇 분이나 남아 계실까요? 귀농ㆍ귀촌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해요. 은퇴 후 최소 30년은 더 살 텐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가장 보람된 일은 생명을 가꾸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도시 사람들의 귀촌을 적극적으로 권유할 계획입니다.”

박 신부는 귀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본당 모임에 초대해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살 집도 안내해줄 생각이다. 박 신부는 “집을 사지 말고 셋집을 구해 최소 1~2년은 살아보고 귀촌을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일단 살아보고 잘 맞으면 정착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박 신부는 “앞으로도 선교사로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본당 신자들의 ‘멋스러움’을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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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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