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창간 81주년 특집] 창간 르포 '믿음 희망 사랑' - 믿음 / ‘난 행복해’ 염종연 할머니

질곡의 삶 돌아보니 늘 주님 함께하셨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악을 악이 아닌 사랑으로 갚으며 한 생을 살아온 염종연 할머니.
그 환한 웃음에서 주님과 함께 숨쉬고 있음이 느껴진다. 좁디좁은 마당 가운데 어느 수사로부터 선물받은 큰 성모상이 할머니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듯 하다.
 
▶ 40년간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아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독버섯으로 아들 죽자 회개
아이들 데려다 키우며 보속

27년 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심 좋은 한 아낙이 버섯장수에게 산 귀한 버섯이라며 고깃국을 한솥 끓였다. 동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연신 숟가락질을 해댔다. 잠시 후, 모두들 토하고 뒹구르고 난장판이 났다. 독버섯이었다. 간신히 대부분 목숨을 건졌지만, 독버섯을 먹고 한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아이 엄마는 ‘왜 우리 아들만…’이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슬픔도 잠시, 형사 입건을 앞둔 버섯장수를 구명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자신의 친척이며 아무런 죄가 없다면서’ 판사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2008년 3월 봄날, 안동을 찾았다. 이름처럼 평화롭고 아늑한 평화동 한 한옥집에서 당시 아이의 엄마를 만났다. 지금 일흔인 염종연(비비안나) 할머니. 얼굴에서부터 사람 좋은 느낌이 흘러나왔다. 굴곡진 삶을 듣고 찾았는데, 전혀 그런 삶을 살아온 표정이 아니다. 자신의 꼬이고 꼬인 삶을 웃으며 풀어놓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 박해와 시련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 12).

숨진 아이의 엄마는 3남2녀를 둔 시골 아낙이었다. 시련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막내 아들 골라도를 잃기 전, 큰 아들 야고보 역시 전신장애로 드러누웠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친구들에게 얻어맞아 목뼈를 다쳤던 것이다. 용하다는 병원을 다녀보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큰 아들의 사고로 시댁에서 온갖 구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앙이 없던 시댁 식구에게 천주교 신자 며느리는 눈에 가시였는데…. 집안에 안좋은 일만 생기면 모두 며느리 탓으로 돌렸다.

어느날, 무당 앞에 꿇어앉혀놓고 ‘성당 안나가면 다친 큰 아들이 낫는다’면서 굿판을 벌였다. 무서움에 떨며 몇시간 동안 주님만 외쳤다. “천주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독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이혼을 강요했다. 남편조차 성당에 나가지 말라며 손찌검을 해댔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이 점점 심해져 술만 먹으면 때리고, 집에 불까지 지르곤 했다. 남편에게 맞아서 쓰러진 그녀에게 동네 사람들은 죽었다면서 가마니를 덮어씌우기도 했다. 삶을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자식들 생각에 이 악물고 ‘더욱 살아야겠다’고 되뇌였다.

그렇게 살아온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은총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읍내에서 미용실을 했는데, 돈벌어서 자식 잘 키우고 잘 살겠다는 욕심 뿐이었지. 하느님보다 내 가족, 내 인생이 더 중요했어. 큰 아들이 드러눕고 나서 막내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니 회개의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고.”

눈물의 기도 끝에, 모두가 하느님의 뜻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상비 한푼 안받고 버섯장수를 위해서 법원에서 친척이라며 거짓 증언했다.

“왜 그를 용서하는가”라는 판사의 말에 “다 내 죄다. 내가 자식에게 음식을 잘못 먹인 탓이다”라며 선처를 청했다.

그의 용서와 사랑은 더 큰 사랑을 이뤘다. 독버섯을 판 이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됐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친척처럼 지내고 있다.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던 그에게 또 한번의 아픔이 찾아왔다. 수녀원에 들어간 큰 딸 마리아가 원인 모를 병으로 6년 만에 수녀원을 나오게 된 것.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겠다는 딸의 바람마저도 꺾어버린 그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모녀는 받아들였다.

# 용서와 기도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 44).

잠시 그의 이야기를 끊고, “큰 아들을 때린 친구들이 원망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40년 세월 꼼짝도 못하고 전신마비로 살아온 자식을 보는 속이 오죽하랴만은, 그는 더 온화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사실 안밉다면 거짓말이겠지. 미움 대신 사랑을 달라고 계속 청했어. 죽고 사는 것 모두 하느님의 뜻 아이겠나. 우리 야고보 몫까지 더 공부하고 더 열심히 살라고 부탁했지. 지금도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갚는다. 인간적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는 그렇게 한 생을 살아왔다.

1991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병자성사를 받고 평온하게 눈감은 남편을 보고 시댁 식구들이 하나 둘 세례를 받은 것.

“시댁 식구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했어. 나를 구박하고 힘들게 했지만, 그들의 영혼을 구해달라고 기도했지.” 시댁 식구들은 시신을 보고 무엇인가 느껴 믿음을 가졌겠지만, 수 십년 기도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이렇듯 그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기도의 힘이다. 큰 딸이 수녀원을 나온 후, 9년째 매일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해 묵주기도 105단을 바친다.

큰 아들이 잠들고 나면 새벽까지 서너 시간 기도한다. 성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듯,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듯 보내는 그 시간은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를 기도로 마무리하고, 하루를 기도로 연다. “예수님, 저 또 부활했어요. 새로운 태양을 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는 행복하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 1).

막내 아들을 잃고 나서 그는 더 많은 자식을 얻었다. 어느날 상갓집에 다녀온 후, 오갈 곳 없는 형제가 눈에 밟혀 데려다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십여 명. 좋은 부모도 만나게 해줬고, 시집, 장가도 보냈다.

여유가 있어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 게 아니었다. 대소변도 못가리는 아들에, 딸린 애들까지 많아서 방을 얻기도 힘들었다. 한때는 공소 마당에 비닐하우스 치고 살기도 했다. 그리고 금식을 해서 모은 돈으로 쌀을 사서 처지가 딱한 이들에게 몰래 갖다주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낮은 곳으로 드러나지 않게 나눔의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이름 ‘종연’(발음상 종년)처럼 종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기에.

“사람들은 지도 못먹고, 자식도 아프고, 남편은 알코올 중독인 처지에 남돕는다고 그러냐면서 손가락질을 했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8-03-3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7

시편 90장 17절
주님 저희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