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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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1주년 특집] 가톨릭신문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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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호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민족·사회 소통에 기여하길”

오랫동안 신앙인 삶 쇄신에 큰 역할 담당
올바른 비전 제시로 교회 ‘지팡이’ 되길

가톨릭신문, 창간 81주년!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지금의 우뚝 선 위상은 그러니까 오래 묵고 축적된 수고와 은혜의 결과였네요!

가톨릭신문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저 앞에서 민족의 복음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이 땅의 교회와 사회에 그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건재해 왔던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매호에 수록된 교회 소식은 당시의 생동하던 교회상을 우리에게 재현시켜 줍니다. 가톨릭신문이 전하는 그 많은 기록들은 우리 교회가 허송세월을 지내지 않았다는 것을 증언해 줍니다. 그것이 교회의 관심사와 신학사조의 흐름을 파악하는데도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한국천주교회가 꺾어지고 일어나고, 정신을 바로잡고 외치던 현장을 읽을 수 있으니 가톨릭신문의 과거는 주님의 진주를 매장하고 있는 밭입니다.

가톨릭신문은 한국천주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가운데 교회의 공지사항은 물론 한국교회에 관한 상식과 교리를 널리 보급시키고 역사의식, 순교자 현양과 반공정신을 고취시켜 왔습니다. 신앙인에게 올바른 안목을 길러 줌으로써 삶을 쇄신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톨릭신문의 존재 자체가 가톨릭의 긍지입니다. 한국 천주교의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해왔고 가톨릭의 전통과 역사를 함께 지켜 왔으니 가톨릭의 영예로운 벗이라 하겠습니다. 밀물이 밀려나면 다시 드러나는 의연한 바위처럼 또 다시 그렇게 긴 시간을 지키고 씩씩한 벗으로 남아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기초한 그리스도교 문서는 신앙생활의 기저인 동시에 선교의 훌륭한 방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소통의 종교이지요. 가톨릭신문이 신앙인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민족과 사회의 원활한 소통에 크게 기여하는 매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통이 올바로, 그리고 제대로 되면 하느님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소통이 막히면 공동체는 격리되고 파괴되며, 성한 구성원들도 귀를 먹고 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세속 언론들이 지나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내거나 과장하여 충격을 주는 사례를 종종 봅니다. 그리하여 허상의 사회, 허구의 우상이 만들어지고, 또 그 때문에 생겨나는 상처를 치유하는데 온갖 에너지를 쏟곤 합니다. 부디 가톨릭신문이 올바른 철학과 비전을 갖추고 교회 내외의 올곧은 지팡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목소리를 훌륭히 대변하고, 시대의 목소리로서 그리고 신앙인의 길잡이로서 앞으로도 가톨릭신문의 숨소리가 크게 들리기를 바라고 귀를 모으겠습니다.

부디 가톨릭신문에 관계하는 모든 분이 선한 뜻과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항진하시기를 빕니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원대한 비전을 새로이 품고 100년, 아니 1000년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빕니다.


◎김지영(한국가톨릭언론인협회 회장, 전 경향신문 편집인)

“혁신적 ‘차별화’ 시도 아쉽다”

교회 구성원의 구시대적 사고 지적해야
감동적인 현장 이야기 많이 게재했으면

필자는 요즘 ‘말단 기자에서 편집인에 이르기까지 27년간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남과 세상에 대해 너무도 많은 비판을 해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젠 남이 듣기 좋은 소리도 많이 하면서 비판으로 인한 죄업도 상쇄해보자는 심정으로 신문사에서 물러난 뒤 2년간 글과 담을 쌓아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톨릭신문사의 원고청탁이라니! 그것도 ‘날카로운 비판과 평가’ 를 이렇게 간절히 원한다니. 고민 끝에 평소 느낀 바 중에서 소재를 골라 신랄하게 비판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영적 단식’이라는 자기약속을 깨고 청탁에 응한 것으로 가톨릭신문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표하면서.

첫째, 평생 신문을 만든 필자가 늘 의아해하는 것은 ‘왜 교회신문들은 이토록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는가’하는 것이다(아무리 기관지라 할지라도). 기사내용에서 1면 구성, 페이지네이션, 지면 디자인, 포맷, 문체에 이르기까지.

차별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 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의 전파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능력 중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모두 부족한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차별화 경쟁을 하면 자연히 다른 기사를 더 많이 발굴하고 더 아름다운 지면을 제작해 독자들에게 더 좋은 선물을 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좋을텐데. 신자들도 엄연히 구독료를 내고 신문을 보는데 우리 형제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그래서 “교회신문들을 통합하라”는 여론도 나오는 것이라 본다.

둘째, 미디어는 정보제공도 중요하지만 ‘소금’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가령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 교회 구성원들이 아직 2차 공의회 이전과 같은(심지어 중세기 때와 같은) 사고와 관습을 많이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교회매체가 외면한 탓도 크다고 본다. 짚을 건 짚어야 한다.

셋째, 형식이 너무 근엄하다. 같은 진리와 사랑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정론으로 다뤄야할 것이 있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뤄야할 것이 있는데 문체나 편집 스타일 모두 딱딱한 형식에 치우쳐 있다. 기사의 길이는 너무 길고 의미 없는 사진도 너무 크다. 제목은 신선도가 약하고 그래픽에 대해선 아예 그 개념이 없는듯하다.

넷째, 내용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이야기, 즉 인간적이고도 믿음이 깔린, 그래서 진리와 사랑의 말씀이 논리적인 방식보다는 감동적으로 전달되는 기사를 더 많이 게재하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 현장 르포처럼 훌륭한, 그리고 대담한 시도를 자주 하기를 권한다. 한마디로 같은 비타민 C라 할지라도 알약보다는 시원한 귤로(성경처럼) 만들어 독자들에게 대접했으면 한다.

다섯째, 1면 등 전면에 행사기사가 너무 많다. 인간승리 이야기든 문화소식이든 의미 있는 기사라면 무엇이라도 다양하게 앞쪽으로 꺼내올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지만 진리는 변치 않는다는 말씀을 뒤집어보면 세상의 패러다임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신문제작 방식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패러다임을 외면하는 것이 마치 진리를 수호하는 자세인 것으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즉시 신문 연구 테스크 포스를 구성해 지면개혁에 돌입하길 권한다.


◎최창섭(서강대 명예교수)

“창의적 아이디어로 비전 제시해야”

신자 개개인 성숙 위한 저널리즘 지향 기대
‘오늘’에 충실한 강직한 언론의 자세 갖춰야

가톨릭신문 창간 8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잠시 숨을 돌리며, 멈춰 볼 줄도 알고(知止) 이제까지 걸어온 80여 성상을 살펴보며(照顧脚下) 조언을 듣는 것도 성숙한 저널리즘의 아름다운 한 모습이다.

인간의 운명을 7년 주기로 10단계론을 편 바 있는 유다의 철학자 필로 폰 알렉산드리엔의 이론을 대입해본다면 가톨릭신문이 태어나서 유치기와 성숙기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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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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