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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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1주년 특집] 인터뷰 - 81살 동갑내기 정하권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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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서상덕·곽승한 기자
 
[창간 81주년 특집]

“신앙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세태 안타까워”

제자 신부만 600여 명… 평생 연구·후학 양성 매진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신자 재교육에 도움 되고파”


창간 81주년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은 81살 동갑내기 정하권 몬시뇰이다.

‘교회론의 대가’, ‘박학다식 달변가’, ‘학자 중의 대학자’

평생을 학자이자 수많은 사제들의 참 스승으로 살아온 교회 원로를 칭하는 많은 단어 앞에서 ‘동갑내기’라는 표현이 송구스럽다.

1994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끝으로 은퇴한 몬시뇰은 경남 마산에서 줄곧 생활하다 지난해 12월 서울로 이사와 조카와 함께 지내고 있다. 2006년에는 뇌졸중으로 대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건강을 되찾아 인근 목동성당에서 미사도 봉헌하고 산책도 가끔씩 나간다.

이제는 존재하는 것일 뿐 사는 게 아니라고 애써 자신을 낮추는 모습 속에서도 몬시뇰이 이야기하는 신앙의 참 의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아직 날 부리시려나봐

“의사가 그래. 육체가 한계를 표시한 거라고. 평생 머리 쓰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머리 안 쓰면 내가 뭐 할라고 삽니까 물었지. 머리 더 쓰지 말고 손 놓고 쉬니 근심잡념거리가 다 떨어져 나간 것처럼 속 시원한데.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아닌 것 같아.”

뇌졸중이라는 큰 병을 감내했음에도 몬시뇰은 정정한 예의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 병이 완쾌된 후 가끔 피정지도도 나섰고 글도 썼지만 예전 같지 않다. 치료 때문에 치아를 대부분 잃어 요즘은 제일 힘든 게 ‘밥 먹자’는 소리다.

“하느님이 실수하면 겁나는 거야.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하느님이 데려가시려다 실수한 거 같아. 그래도 이렇게 건강을 찾게 해 주셨으니 감사할 수 밖에. 하느님께서 아직도 날 더 부리시려나봐.”


난 참 재미없는 사람

몬시뇰의 이력 대부분은 신학교 교수생활로 채워져 있다. 자연 공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는, 학자 중 대학자라 불리는 몬시뇰이지만 공부에 대해 내린 정의는 뜻밖이다.

“공부란 거… 참 미련한 짓이야. 재미도 없고 건강도 상하고 돈도 안 생기고. 그런데 나는 공부에 미친 사람이야. 그렇게 보면 참 재미없는 사람이지.”

승부기질이 보이지 않으니 멋이 없고 공부에만 미쳤으니 스스로 재미없다고 평할 수밖에. 그러나 몬시뇰은 지난 삶을 회고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제자 양성을 꼽는다.

“입학 때부터 졸업까지 줄곧 내게 배운 신부만 600명 정도 될 거야. 피정까지 치면 거의 모든 신부들이 나한테 지도 받은 셈이지.”

제자들은 몬시뇰을 시어머니 같이 엄하면서도 신명나고 위트 넘치는 스승으로 기억한다. 몬시뇰의 제자사랑은 신학교 시절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스승은 제자들을 끌어안고 사랑을 베풀어야 해. 내가 책임지고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규칙을 어겼다고 쫓아내는 거 난 절대 반대야. 신학교에서 만든 규칙 중에 십계명을 거스르는 게 어디에 있나. 규칙은 공동생활의 약속일 뿐이지. 스승은 학생들과 한 배를 탄 이상 함께 고생해야 해. 내가 편하자고 제자를 버리는 건 있을 수 없지.”


외유내강(外柔內剛)

몬시뇰 인터뷰마다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단어는 몬시뇰의 좌우명이기도 한 ‘외유내강’이다. 몬시뇰은 군대 이야기부터 꺼냈다.

“군대로 치면 신부는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아니라 영관급 장교야. 신부는 아무리 젊더라도 시작부터 지도자로 출발하게 되잖아. 그만큼 책임감이 큰 위치에 있는 신부들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워야 해.”

신부가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언뜻 들렸던 오해는 다음 이야기로 풀렸다.

“신자들을 잘 파악해야 효과 있게 공동체를 이끌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신자들을 장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야.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게 신부의 직분이지, 그 복음을 강제로 먹일 수는 없는 일이잖아.”

몬시뇰이 말하는 외유내강은 복음을 증거하는 책임 있는 사제의 모습 그 자체임을 느낄 수 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

“어떤 의미로 난 이미 정신적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야. 가끔 신문 보면서 교회 소식을 접하지만 예전처럼 관심은 없어.”

교회 이야기를 꺼내자 몬시뇰은 손사래를 친다. 늙은이한테 들을 이야기가 뭐 있냐는 표정이다. 몇 차례 더 고언(苦言)을 청하자 겨우 입을 뗐다. 신앙 이야기였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느님을 따라가는 것이야. 왜 자신의 마음에 맞춰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게 신앙이라고 여기는지 모르겠어.”

몬시뇰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탓인지 마치 신앙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안타깝다고 했다.

“성경에도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라고 하셨지, 그것을 네가 적당하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라는 말씀은 없어.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을 정의하라고 특권을 주시지는 않았다는 말이지.”

나주 윤율리아 문제와 관련해서도 몬시뇰은 “신앙이 과연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이 혼란을 겪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또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교회가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자들 참 돈 많다라는 이야기밖에 못하겠어. 돈도 많고 시간도 많으니 자연스레 유혹에 빠지는 거야. 신앙의 본분만 하려고 해도 바쁜데….”

몬시뇰은 덧붙여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반작용이 너무 커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교회의 힘은 신앙의 힘

교회 신자가 다른 종교에 비해 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몬시뇰은 신앙을 빗대 이야기했다.

“신자 수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 나도 기분은 좋아.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신앙인 개인의 회심이야. 때문에 어떻게 하면 신자를 더 늘릴 수 있을까 우리가 마음대로 방법을 정하는 거 난 반대야.”

회심은 사람들 개개인의 인격적인 결단이라는 게 몬시뇰의 생각. 때문에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교회가 변화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숫자에 연연해 신자를 물리적으로 늘리기 위한 운동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숫자놀음이라는 껍데기에 현혹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교회의 힘은 숫자의 많음에서 오는 게 아니야. 교회의 힘은 신앙의 힘에서 나오는 거야.”


늘 주님의 눈으로 되돌아보길

인터뷰 말미. 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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