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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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더불어 평화를 누리리라! 청계시장 공동체

"경기는 불황이죠, 하지만 신앙은 호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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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 골라!" 장사꾼 손뼉 치는 소리, 조금이라도 싼값에 물건 사려는 흥정 소리, "짐이요 짐"을 외치며 발 디딜 틈 없는 골목을 헤쳐 나가는 짐꾼 소리, 이 모든 것이 모여 활기 넘치는 시장 풍경을 만들어낸다.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 그런 곳으로 재래시장만한 곳이 또 있을까. 세상살이가 힘겹거나 삶이 시들하게 여겨질 때 시장에 한번 나가보자.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묻어나는 치열한 삶의 열기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재래시장에는 사람 사는 맛이 있다. 추억과 향수가 있고, 소박한 삶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땀 냄새 밴 정겨운 공간, `덤과 에누리`라는 여유와 인정이 남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 청계시장본당 신자 상인들이 주임 권흥식 신부(가운데)와 안규봉 총회장(오른쪽 두 번째)의 방문을 받고 정담을 나누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 PM 1:00 하루 시작

보통 사람들이 단꿈에 빠져 있을 한밤중,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평화시장 의류도매상가는 살아나기 시작한다. 환하게 불을 밝힌 전구들 아래로 작은 점포가 빼곡히 늘어서 있다. 국내 최대 의류 도산매시장인 평화시장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비좁은 통로에는 전세버스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인들이 북적댄다.
 예전처럼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활력이 흐른다.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는 손님과 더는 안 된다는 상인들의 흥정이 한밤중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역동적이다.
 동대문 패션시장의 원조인 평화시장에는 역사 깊은 신앙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청계시장(준)본당(주임 권흥식 신부)이다. 평화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신자 12명이 1989년 1월 28일 상가 옥상에 모여 소공동체 모임을 열면서 신앙을 키워 온 지 벌써 햇수로 20년째. 1988년 5월 15일 창간, 스무살이 된 평화신문 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1994년 공소가 설립됐고 2001년 10월 본당으로 승격됐다.
 한국전쟁 때 피란한 실향민들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곳이 평화시장이다. 상가 설립자인 고 김한보(토마스)씨도 신자였다. 평화시장을 비롯해 통일상가와 동화시장, 청계천 건너 동대문종합시장, 두산타워ㆍ밀리오레ㆍAPMㆍ굿모닝시티 등 인근 패션몰이 모두 본당 관할 구역에 속한다.

# AM 06:00 새벽 장사 마치고

 소매상인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금방 새벽이 가고 아침이 찾아온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잠시 새우잠을 자다 인기척에 벌떡 일어난 김용순(안나, 61)씨가 씩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피곤한 기색이지만 표정만큼은 밝다.
 김씨는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평화시장 2층 `가-203호 대윤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에는 새벽 장사만 하다 요즘은 낮에도 가게 문을 열고 있지만 손님이 거의 없는 한산한 모습이다.
 "이 자리에서만 3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에요."
 10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고 도심 곳곳에 생겨나는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에 밀려 더욱 힘들어 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삼대 거짓말 중 하나라고 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는 밑지고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다.
 작업복ㆍ단체복 전문점 `1다 99호 그랜드상사`를 운영하는 여성총구역장 이선희(로사리아)씨도 "소매상조차 발길이 줄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되다보니 종업원도 없이 장사하는 가게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진짜 밑지고 파는지는 몰라도 평화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점포주가 직접 생산ㆍ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백화점 못지 않은 품질을 자랑하는 물건을 흥정만 잘하면 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서민들이 즐겨찾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30여년 동안 평화시장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김용순씨가 봄꽃처럼 화사한 여성복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 PM 12:00 미사로 삶과 신앙 일원화

 평화시장 한 귀퉁이 통일상가 5층에 위치한 성당에 신자 상인 3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79.2㎡(24평) 남짓한 작은 성당이지만 시장 신자들이 기도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는 유일한 공간이다.
 평일 미사는 낮 12시에 봉헌한다. 전날 밤 10시부터 14시간이 넘도록 잠 한숨 제대로 못 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신앙 열정이 묻어 나오는 힘찬 기도와 성가 소리는 `마음 착한` 시장 상인들의 일치와 친교를 보여준다.
 권흥식 주임신부는 "밤새 장사를 하다가 피곤한 몸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빠지지 않는 신자들을 보면 놀랍다"고 말했다.
 어느덧 434명 신자공동체로 성장한 청계시장본당 신자들은 지난 1994년에 2억여 원을 모금, 자체적으로 성당을 마련했을 정도로 열심이다. 대부분 의류 도ㆍ소매업에 종사하는 상인들로 동병상련의 고충을 서로 위로하고 신앙 안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상인들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후 4~5시까지 거의 하루 종일 장사를 한다.
 토요일 낮 12시, 오후 4시에 특전미사를 봉헌한다. 100~130명이 참례하는 특전미사 때는 50~60석 성당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나머지 신자들은 4ㆍ6층 회합실에서 TV 모니터로 미사에 참례한다. 바로 옆 상가를 매입해 성전을 확장하려고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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