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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가톨릭신문 인터뷰이(interviewee) - 본지 도움으로 병마 극복하고 새 삶 찾은 이희연씨신학생

때 조혈모세포 기증한 윤하용 신부, 사제품 받고 2차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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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4월 6일자 가톨릭신문에 보도된 이희연씨 기사.
이씨는 이 기사를 통해 모금된 금액으로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 여대생으로 자란 이희연씨가 환하게 웃으며 가톨릭신문을 통해 도와주신 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 윤하용 신부의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해 보도한 1996년 3월 17일자 가톨릭신문.
 
 
▲ 윤하용 신부가 본당 신자들과 지난 1996년 3월 17일자 가톨릭신문에 게재된 기사 스크랩을 보며 기증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보면 많은 추억이 담겨있다.

‘사진 속 꼬마는 어떻게 컸을까?’ ‘저 친구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등 궁금증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창간 82주년을 맞은 가톨릭신문은 교회 소식 외에도 따뜻하게 혹은 아픔에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다양한 신자들의 이야기들도 담아왔다. 문득 그들의 현재 모습이 궁금해졌다.

가톨릭신문의 인터뷰이들을 찾아 다시 한 번 기자들이 나섰다. 보도 이후 인터뷰이의 소식을 들어보자.

■ 본지 도움으로 병마 극복하고 새 삶 찾은 이희연씨

난치병과 힘겹게 싸우던 소녀가 꿈 많은 숙녀로 성장했다.

가톨릭신문 1997년 4월 6일 보도된 이희연(미카엘라·24·춘천 옥천동본당)씨가 ‘다시 찾은 가톨릭신문 인터뷰이(interviewee)’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당시 기사만 들고 강원도 강릉으로 향했다. ‘사진 속의 소녀가 어떻게 컸을까?’ 궁금해 하고 있던 찰나 이씨가 나타났다.

“제가 조금 늦었죠. 죄송해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은 긴 생머리에 짧은 치마가 잘 어울리는 예쁜 여대생이었다.

강릉원주대학교 강릉캠퍼스 산업공예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희연양은 졸업작품과 어학연수를 준비에 아르바이트까지 바쁘게 지낸다고 말했다. 처음 만나는 기자와도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병마와 싸우던 어린 시절의 아픔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12년 전, 이씨는 골육종이 발병해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었다. 3000만 원이 넘는 수술비와 치료비 등 어린 딸을 위해 급작스럽게 큰돈을 마련해야 했던 희연양의 부모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다니고 있던 원주교구 도계본당의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치료비 모금에 앞장섰고 희연양의 소식이 가톨릭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가톨릭신문을 통해 도와주신 은인들에게 정말로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그분들 때문에 제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후 3개월에 한 번씩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는 11살의 소녀가 견디기에는 고통이 컸지만 병마와 싸우며 일찍 철이 들었던 희연양은 그 고통도 잘 버텨냈다.

지금까지도 일 년에 한 번은 검사를 받고 있지만 그것도 올해까지만 하면 된다고 했다. 덕분에 재수술도 하지 않았고 평생 보조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었다. 수술을 해도 다리를 절게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전혀 절지도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회 때마다 계주선수로 뛸 만큼 달리기도 잘할 수 있게 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희연양은 어머니 공성순(안나)씨와 동생 이희진(도미니카)양과 함께 강릉으로 이사했다. 두 딸이 더 큰 도시에서 공부하기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 때문이었다. 아버지 이동선(베드로)씨는 직장문제로 여전히 삼척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투병 당시에도 어른스럽게 “엄마와 아버지에게 큰 짐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희연양은 여전히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아버지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강릉집에 오시는데 많이 늙으셨더라고요. 부모님께 잘 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아요. 애교도 없고 집에서는 조용하거든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모시고 살겠다고 했는데 엄마, 아빠가 싫어하던데요.”

영어를 좋아한다는 졸업반 희연양은 여느 대학생들처럼 진로와 취업 걱정이 한창이다. 하지만 그 걱정만큼이나 꿈도 많다.

“틀에 박힌 회사가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전공도 살리고 좋아하는 영어도 가르치고 싶어서 투잡하려고요.”

그리고 꿈 하나 더.

“직장도 잡고 안정되면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처럼 봉사도 하고 또 저처럼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 신학생 때 조혈모세포 기증한 윤하용 신부, 사제품 받고 2차 기증

“조혈모세포 기증해도 건강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네’ 한마디가 ‘생명’이 되는 일이지요.”

‘윤하용’. 이 이름 석자를 만난 건 지난 1996년 3월 17일자 가톨릭신문에서다.



가톨릭신문  20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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