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랑의 집 고쳐주기] 31. 열 다섯 번째 가정 - 부산 주기수 할머니(하)

이젠 쓸쓸하지 않아요, 행복해요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보름 만에 주기수(안나·82·부산교구 반송본당) 할머니 집을 딸기 한 봉지를 들고 다시 찾았다. “누구여~” 문을 여는 주 할머니 뒤로 동네 할머니들이 우르르 일어선다. 반모임을 가질 겸, 이야기도 나눌 겸해서 모였다고 했다. 깨끗하게 확 달라진 주 할머니의 집이 이제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된 것이다.

“저희 집이 이제는 동네 노인정입니다. 뭐라고 고마워해야 할지….” 주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보통 열흘이면 끝나는 공사가 2주 넘게 걸렸다. 공사를 하면서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집 대문 밖에 있었던 재래식 화장실은 수세식 화장실로 변모,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화장실문도 과거에는 합판으로 대충 만든 탓에 불편이 많았다. 할머니는 그래서 “화장실 문만 고쳐줘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공사를 맡은 세정그룹은 정화조를 별도로 묻고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해 줬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고려, 화장실 내부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연탄 보일러도 도시가스 보일러로 교체, 이제는 연탄가스 중독 걱정에서 ‘안녕’이다. 항상 집안에 가득하던 연탄가스 냄새도 완전히 사라졌다. 연탄가스 때문이었는지 만성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머리가 맑다 보니 삶에도 의욕이 넘친다. 오랫동안 몸에 두르고 있던 무거운 쇠사슬을 탁 털어낸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주 할머니는 이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연탄을 갈지 않아도 된다.

안방으로 통하는 좁은 거실 앞에는 튼튼하면서도 부드럽게 여닫히는 이중창을 설치, 겨울 찬바람을 막았다. 50년 넘게 버텨온 집이어서 겨울이면 찬바람이 안방까지 들이쳤지만 이젠 그 걱정도 덜었다.

부엌 조리대도 반짝반짝 새것이다. 습기 가득 먹고, 누렇게 변색됐던 부엌벽도 타일 시공으로 산뜻해졌다. 과거에는 목욕 한번 하려면 물을 따로 받아 사용했지만 이젠 샤워기로 편하게 할 수 있다. 미장공사와 페인트칠로 마감한 벽은 산뜻함을 더한다. 또 깨끗한 벽지로 50년 넘은 집의 초라함을 감췄다. 형광등을 새로 달고, 전기설비도 교체했다.

“잠깐만이라도 집을 비우면, 이웃 할머니들이 더 서운해 합니다. 할머니들이 모이는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젠 쓸쓸하지 않아요. 친구들이 매일 찾아오고, 좋은 이웃들이 늘 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말 행복해요.”

20여 년 전 남편이 물려주고 떠난 매매가 2500여 만원의 15평 집. 말이 내 집이지 은행 대출이 1300여 만원이다. 개인 소유의 집이 있다는 이유로, 또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할머니는 자녀들에 대해 묻자 입을 닫았다. 월수입은 노인연금 8만4000원과 어려운 형편의 자녀들이 모아 보내오는 20만원이 전부다.

그런데도 주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고마워요, 고마워요”를 반복한다. 80대 할머니답지 않은 깨끗한 피부가 더욱 맑아 보였다. 주 할머니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했다. 딱 하나 남은 욕심이 있다면, ‘그날이 오면’ 자는 듯이 편안히 하느님 품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 주기수 할머니는….

21살 나이에 탄광 관리자로 일하던 6살 연상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행복은 잠시. 결혼 9년 만에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팔도 잃었다.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농사일에서부터 가축 키우는 등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할머니는 어느날 대형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다. 지금도 왼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항상 퉁퉁 부어있는 다리는 현재 만져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당뇨를 앓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남편을 살리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며 간호했다. 그렇게 남편을 40년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05-1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3

시편 119장 165절
당신의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큰 평화가 있고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