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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파리외방전교회 (하) - 한국지부의 역사

‘대개척자들’, 한국전쟁 때 12명 순교, 박해 어려움에도 입국 사제 양성에 힘써, 병원·교도소 등 사목하며 북한 선교 준비, 이주민·청년 위한 배려 사목 과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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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5월,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게브리앙 주교 방문 기념으로 대구 성모당 앞에서 선교사들과 기념촬영.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대구교구 초대교구장을 맡았던 드망즈 주교다.
 

1801년 주문모 신부가 6년의 한국 선교 끝에 순교하고 난 뒤 한국 신자들은 교황에게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두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세 번째 편지가 교황 레오 12세에게 무사히 전달됐고 교황은 파리외방전교회에 선교사 파견을 청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서는 교황의 의견에 미온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 회원이 38명뿐인 상황에서 새로운 선교지에 보낼 인력과 재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조선’이란 곳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또 밀입국한 이들에게 무자비하다고 전해진 악명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 선교사 파견 결정을 할 수 없었던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1828년 회원들에게 회람을 돌렸다. 혹시 지원자가 있다면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 방콕 보좌주교로 임명된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에 가겠노라고 자원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교구 초대교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 그렇게 파리외방전교회와 한국교회는 연을 맺었다.

그러나 조선 땅을 밟기도 전에 브뤼기에르 주교는 운명을 달리했고 그 뒤를 이어 모방·샤스탕 신부가 선교사를 자청했다. 그런 상황에서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는 최초로 모방 신부가 입국에 성공했다. 또 이듬해에는 샤스탕 신부, 후에 제2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되는 앵베르 신부도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모방 신부는 입국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에서 3명의 젊은 조선인을 중국으로 보내는 등 현지인 사제 양성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파리외방전교회 활동의 특수성이기도 했다. 김대건·최양업 신부 탄생은 그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종교자유가 명시화되고, 그 후 10여 년이 흘러 조선에 비교적 종교 자유가 확실해졌던 1900년경, 파리외방전교회는 명동대성당을 건축하고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했다. 특히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는 서울신학교를 세워 수십 명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시켰다.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수도원을 찾아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으며, 메리놀외방전교회와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도 선교사 지원을 청해 평양 춘천 지역을 각각 이들에게 맡겼고, 원산지역은 성 베네딕도회 회원들에게 이양했다.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부이용·베르몽·시잘레 신부 등 열성적인 신부들의 활동으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는 소위 ‘대개척자들의 시대’를 맞는다. 특히 델랑드 신부와 생제 신부는 예수성심시녀회와 성가소비녀회를 각각 설립했는데 이 두 수녀회 모두 현재 한국교회 여성수도회 안에서 중추적인 자리를 잡고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해 12명의 회원이 학살되는 비극을 다시 겪어야했던 파리외방전교회는 휴전 이후로도 40여 명이 활동했으며 현재는 12명의 회원이 남아있는 상태다. 한국지부 본부도 2008년 11월 서울 성북동에서 합정동 전진상센터로 옮겨왔다.

홍세안 지부장 신부가 지부 본부를 지키고 있고 회원들 대부분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목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전체 모이는 때는 피정 등을 포함 일 년에 1∼2번 정도. 활동 영역은 병원 원목, 외국인 및 이주노동자 사목, 피정·영성지도, 교도사목 등 다양하다. 가장 혜택 받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봉사하는 노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구 전체 인구 중에서 60의 비중을 차지하는 아시아 대륙이지만 그 인구 비중만큼 가톨릭 신자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파리외방전교회가 해야할 일은 아직도 많다는 의견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특히 북한교회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홍세안 신부는 앞으로 북한이 개방되면 북한 선교를 위해 투신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상당수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은 인도적 구호단체 인솔을 위해 북경을 통해 북한에 다녀온바 있다.

한국 사회 내부적으로도 제 상황들이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전교회가 함께 도와야할 사목적 과제가 많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처지에서 그 2세들에 대한 교회의 배려 역시 필요해 질 것이라는 예상, 그리고 점점 교회를 떠나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 등이다.

사회가 변하는 만큼 그에 응답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새로운 도전에 답할 파리외방전교회의 활동 반경 역시 새로워 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한국지부의 시도를 위해 2∼3년 내 본부로부터 2명 정도의 젊은 사제가 합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100여 년 넘게 한국교회와 고통·기쁨을 함께 해온 파리외방전교회. 각 시기마다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요청에 노력해온 이들은 그 가운데 가장 큰 봉사를 ‘희망을 품고 한국인 사제 양성에 늘 힘써 왔던 것’으로 꼽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교회와 함께하는 이들의 활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될 것이고 한국 신자들과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회원들.
연피정 중 미사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회원 대부분은 외국인사목 피정 영성지도 병원사목 등 특수 사목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최승룡 신부가 자리를 함께했다.
 


가톨릭신문  201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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