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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복음화의 구심점, 본당 - 수원교구 화성 왕림본당

지역 교육 중심지 … 기도하는 공동체로 성장, 1893년 한문서당 열며 지역 발전에 공헌, 가정 안에서의 신앙 전수 등 쇄신에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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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림성당 현재 모습.
최근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 노력의 하나로 왕림성당 성역화도 선포한 바 있다.
 

1886년 한불조약 이후에야 산골 마을 곳곳에서도 몇 달에 한 번이나마 사제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제가 찾아오기 전까지 기나긴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오롯이 신앙을 지켰고, 기도문도 잊지 않았다. 봄 가뭄으로 논을 늦게 대는 6월 마냥모 시기, 하루 한 시간도 손을 놓을 수 없는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목방문 소식이 들리면 모든 신자들이 그 자리에서 걷은 바지자락을 내리고 사제를 맞이하러 나갔다. 그렇게 신앙을 이어온 신자들의 삶을 바탕으로 갓등이(현재 왕림)에는 한강 이남 경기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본당이 세워졌다.

이후 수원교구 화성 왕림본당(주임 윤민재 신부)은 신앙뿐 아니라 지역사회 교육의 구심점으로, 성소의 못자리로 신심 깊은 구 교우촌의 면모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본당 신자들은 설립 120주년을 지내면서 더욱 탄탄한 기도울타리를 쌓고, 영적 성장에 매진 중이다.

■ 선교·교육사업의 교두보

1839년 1월 25일,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쓴 일기에는 ‘갓등이공소’의 명칭이 등장한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신자들이 정착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기록 등으로 미루어 기해박해 이전에 이미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888년, 갓등이본당이 명동본당에서 독립할 당시 본당과 관할 공소 신자 수는 현재 본당 교적상 신자 수보다 많은 1790명이었다.

본당 초대주임인 앙드레 신부는 부임 직후 신자들과 힘을 합쳐 사명산 아래에 성당 터를 잡고, 신자 2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성당과 사제관, 식청 등을 초가집으로 봉헌했다. 성당은 1902년 기와성당으로 탈바꿈한다.

갓등이는 수원과 충청도를 잇는 좁은 산길에 위치한다. 덕분에 박해 시대, 중국에서 배를 타고 충청도 아산만 쪽으로 상륙한 선교사제들이 서울로 들어가기 위해 거치는 길목이 됐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모범적인 신자들로, 며칠씩 묵어가는 선교사들을 외부 밀고자들로부터 철저히 보호하곤 했다.

이렇게 탄탄한 신앙의 뿌리를 바탕으로 설립된 본당은 미리내본당에 이어 하우현·북수동·발안·남양·정남본당 등을 분가시키며 말씀 선포에 힘써왔다.

특히 본당 평신도사도직단체 중 ‘선교단’은 가장 큰 모범을 보인 단체로 꼽힌다. 신심 깊은 회장들로 구성된 선교단은 농한기가 되면 으레 며칠에서 몇 달씩 타 지역으로 이른바 선교여행을 떠났다. 마치 초대교회 사도들이 각 지방을 방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공동체를 세우던 모습을 연상시켰다는 평가다.

본당이 지역사회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던 이유 중 하나는 교육사업 덕분이다. 역대 신부들과 신자들은 신앙 전수뿐 아니라 낙후된 관할 지역의 개발과 주민 의식 교육, 소득 증대 등을 위해서도 갖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본당은 1893년 한문서당인 삼덕학교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교육사업을 펼쳤다. 이러한 교육사업은 신자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삼덕학교는 이후 신명의숙, 왕림학원, 왕림강습소, 봉담고등공민학교, 광성국민학교 등으로 변모하며 지역 사회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왕림강습소는 일제 시기, 사립교육기관에 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본당이 끝까지 지켜낸 교육시설이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중등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신자들의 열망에 의해 세워졌던 봉담고등공민학교는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개교한 지 1개월도 안 돼 폐교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광성국민학교는 전교생의 수업료를 면제하며 폭넓은 교육정책을 펼친 학교로 더욱 관심을 모았었다. 당시 학교 운영 예산이 부족해 학생들도 방과 후 뽕잎을 따서 누에를 키우며 어렵사리 유지했지만, 신자들의 정성과 사랑, 꿈이 가득 담긴 터였다. 현재 이 학교 터에는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자리 잡아 신앙 교육의 열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 묵주기도 운동 전개

최근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 노력의 하나로 왕림성당 성역화도 선포한 바 있다. 초기교회 때부터 이어져온 신앙공동체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 배경이다.

본당 신자들도 본당 설립 100주년과 120주년 등을 기념해오며 기도하는 공동체, 가정 안에서의 신앙 전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구역별 묵주기도 운동을 펼치며, 지난 한 해에만 140만 단을 봉헌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현재 본당 어르신들 또한 매일 마을회관에서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기도로써 친교를 나누고 선교에도 이바지한다.

본당 주임 윤민재 신부는 “급변하는 사회 안에서 신자들조차 삶과 신앙의 괴리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확산하기 위해 기도로서 신앙의 가치를 살리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윤 신부는 “며칠씩 걸어서 고해성사를 한 번 보러 오던 예전과 달리, 현재 신자들은 전국 어디서나 언제든 미사와 성사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을 잘 찾지 않아 안타깝다”며 “옛 신앙선조들의 모습을 되새겨 각자 삶의 중심에 미사와 성사, 기도를 통한 기쁨이 채워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기와성당 당시의 왕림성당.
이 지역에는 이미 기해박해 이전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짐



가톨릭신문  201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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