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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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복음화의 구심점, 본당 - 원주교구 횡성 풍수원본당

고풍스런 위용 간직한 성체신심 고양 구심점, 옹기 구워 연명하던 신앙선조 손에 성당 지어져, 지역 선교 못자리이자 교육 중심지로 자리매김, 매년 열리는 성체현양대회 수천 명 신자들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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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선조들의 땀방울로 한 장 한 장 쌓아올려진 풍수원성당은 시도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굽고…. 박해를 피해, 하나둘 깊은 교우촌에 모여든 신앙선조들의 많은 수가 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팔아 연명했다. 신자들은 그렇게 어렵사리 모은 돈을 한 뼘 한 뼘 성당 터를 늘려 가는데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 힘은 강원도 내 서양식 벽돌 건물로 바로 성당을 세우게 했다.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에 자리 잡은 풍수원성당, 12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고풍스런 위용을 자랑하는 이곳은 성지 순례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신앙의 터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해마다 원주·춘천교구가 공동으로 여는 성체현양대회에는 수천 명에 이르는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성체신심 고양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신자들의 발길이 닿은 곳은, 그곳이 강원도 산골짜기라도 빠르게 복음말씀이 퍼져나갔다. 도시화 영향으로 한창때에 비해 교세가 줄긴 했지만, 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풍수원성당에서는 연중 순례객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신앙 선조 피땀 고스란히 남아

서울 경기 일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은 강원도와 충청도 깊은 산골이었다. 강원도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도 1801년 신유박해 무렵으로 알려진다.

경기도 용인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태보(베드로)를 비롯한 40여 명의 신자들은 신유박해 여파가 거세지자, 강원도로 찾아들었다. 8일간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그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현재 풍수원성당 인근이었다. 이후 80여 년간 이곳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루이 르 메르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 본당이 설립된 때는 1888년. 강원도 지역에도 본당 공동체가 모습을 선보이게 됐다. 당시 풍수원본당은 춘천과 원주, 화천, 양구, 홍천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신자 수 또한 2000여 명에 달했다.

1896년, 2대 주임으로 한국인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했다. 정 신부는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의 주선으로 1884년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지만 기후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용산신학교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943년 선종 전까지 풍수원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본당 역사와 함께했다. 정 신부의 업적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성당 건립이었다.

정 신부는 한국인 사제로서는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인물이다. 특히 본당 신자들은 정 신부의 뜻에 공감,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열성을 보였다. 1909년 신자들은 중국인 기술자들의 손을 빌려 서양식 연와벽돌을 굽고 나무를 해다 날라 성당벽을 쌓아나갔다. 초가지붕들 사이로 우뚝 선 종탑은 당시 풍수원 안팎에서 명물로 회자됐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좌우 기둥과 아치형의 천장이 조화를 이룬 장중함과, 좌석 없이 펼쳐진 마룻바닥이 풍기는 낯설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성당 뒤편으로는 유물전시관과 피정의 집 등이 자리한다.

본당 신자들은 성당을 완공한 지 5년 후인 1912년에는 벽돌조 사제관도 완공했다. 현재 한국교회 내에서 가장 오래된 2층짜리 이 사제관은, 개조 과정을 거쳐 지난 1999년 유물전시관으로 새 모습을 갖췄다.

새 유물전시관에는 170년 전에 제작된 옹기 십자고상을 비롯해 각종 전례용품과 교리서 등 유물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현재 풍수원성당은 시도유형문화재 제69호, 구 사제관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풍수원본당과 지역사회가 종교문화 유산과 지역 내 휴양 인프라를 통합, 종교적·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살리고자 추진한 바이블파크 조성은 안팎의 어려움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진 못하고 있다.

■ 지역 신앙·교육 못자리

성당을 지은 후 정 신부와 본당 신자들은 곧바로 삼위학당을 설립, 지역사회 교육의 구심점으로도 뜻 깊은 면모를 보였다. 삼위학당에서는 한글과 한문은 물론 수학과 역사 등의 신학문을 가르쳐 큰 호응을 얻었다. 이곳은 후에 광동초등학교로 발전했다. 또한 지속적인 선교활동을 이어간 본당은 설립 직후 원주본당을 분가시킨데 이어 춘천·양평·대화·횡성본당 등을 지속적으로 분가시켜 나갔다.

특히 해마다 성체성혈대축일이면 한국교회 전 신자들의 눈길이 풍수원성당으로 모아지곤 한다.

1939년 춘천지목구 설정으로 서울교구에서 춘천교구로 편입됐던 풍수원본당은 1965년 원주교구에 편입된다. 하지만 풍수원본당 미사와 성체행렬, 산상 성체강복 등으로 이어지는 성체현양대회는 원주와 춘천뿐 아니라 교구와 본당의 벽을 뛰어넘는 신앙대회로 자리해왔다. 성체대회는 1920년 제1회 행사가 열린 이후 6·25 한국전쟁 3년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거행되고 있다.

본당 주임 김승오 신부는 “전국의 보다 많은 신자들이 언제든 열려있는 유물전시관과 성당을 찾아 신앙선조들의 뜻을 되새기고 보다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데 힘을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 1939년 6월 열린 풍수원 성체현양대회 성체거동 모습.
 

 
주정아 기자 (


가톨릭신문  201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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