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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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복음화의 구심점, 본당 - 수원교구 미리내본당

김대건 신부 유해 안장돼 있는, 한국교회 대표적 순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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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들어서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등 대규모 박해가 연이어졌다. 서울 및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현재 경기도 안성 지역 산속으로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신자들은 낮에는 밭을 일구거나 옹기를 구워 팔아 어렵게 생활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신앙공동체를 꾸려갔다. 해가 기울면 산기슭에 빼곡히 들어선 신자 가정마다 등불이 켜졌다. 멀리서 바라볼 때 그 모양새는 꼭 밤하늘 은하수처럼 빛을 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미리내’였다. 미리내는 순 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한다. 신유박해 때부터 자리 잡은 미리내 교우촌은 이후로도 지역 복음화의 구심점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가장 많은 발걸음이 오간 성지로 꼽힌다. 특히 미리내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성지’로 우뚝 서게 됐다. 현재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와 그의 모친,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인 요한 요셉 페레올 주교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서울 새남터 행형장에서 김 신부의 유해를 거둬 미리내로 옮겨온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를 비롯해 무명 순교자 묘역, 수원교구 성직자 묘역도 미리내에 조성됐다. 그리고 각 기도의 길을 오르기 전, 100년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미리내본당 돌집성당과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다.



미리내 지역에 본당이 설립된 때는 좀 더 시간이 흘러 1896년에 이른다. 미리내본당 초대주임인 강도영 신부는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에서 서품 받은 3명의 사제 중 한 명이었다. 강 신부는 1896년 서품식을 마치자마자 미리내마을 사목자로 발령을 받았다. 신자들이 너무나 애타게 기다리던 한국인 사제가 왜 서울이나 전주 등 행정적 구심점이 되는 곳이 아닌 산 깊은 미리내 마을로 발령을 받았을까. 그만큼 미리내 지역에 돌봐야 할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리내는 당시 왕림본당 관할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하나의 공소일 뿐이었지만 이곳 신자들의 열성적인 신심은 늘 빛을 발했다. 실제 강 신부가 부임할 당시 새로 분가한 미리내본당 신자 수는 182명에 불과했지만 25년 후 강 신부의 사제수품 은경축 기념 미사에 참례한 인원만도 3000여 명이나 될 만큼 교세 또한 왕성하게 늘어갔다.

굽이굽이 산에 둘러싸여 더욱 아늑하게 느껴지는 미리내성지 초입. 입구 쪽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돌집 성당은 한국교회 역사상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사제와 신자들의 손으로 처음 지은 성전으로 가치를 더하는 교회유산이다.

당시 본당 관할 신자들은 대부분 피난민들로서, 너나할 것 없이 힘겨운 살림살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강 신부는 이들에게 차마 봉헌금을 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대신 신자들에게 주일미사에 올 때마다 주변에서 돌을 하나씩 주워오라고 권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이고 져서 나른 돌로 신자들은 지금까지도 튼튼하게 자태를 뽐내는 돌집성당을 세웠다.

이후 본당은 사제관과 학교 건물도 신축, 국어는 물론 역사와 농업, 교회교리 등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해성학원을 설립했다. 이에 따라 본당과 학원은 안성 지역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또한 강 신부는 미리내 지역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자 양잠과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제사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강 신부의 노력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높이 인정받은 바 있다.

특히 미리내본당은 1963년 수원교구가 설정되면서 순례 사적지로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갖추게 된다. 보다 구체적인 성지 개발이 진행된 때는 1976년이다. 이후 지역 신자들을 비롯한 전국 각지 신자들이 알음알음 모아 보낸 정성으로 지금과 같은 성지의 모습으로 단장할 수 있었다.


 
▲ 미리내성당의 모습.
 
 
현재 미리내본당(주임 안병선 신부) 사목자들은 본당 관할 신자들뿐 아니라 순례자들을 위한 성지순례 사목도 겸하고 있어 매일같이 분주한 일과를 보낸다. 신자들도 언제 어느 때나 순례객들을 가족처럼 푸근하게 맞아들이다.

본당의 내외적 모습은 여느 시골본당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본당은 2011년 12월 현재 교적상 신자수 900여 명, 미사참례자는 250여 명의 자그마한 공동체다. 이 때문에 본당 청소년위원회와 소공동체위원회도 최근에야 발족했지만, 교구 사목방침에 발맞춰 새로운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는데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본당신자들은 순례객들을 위해 직접 농사지은 무공해 재료로 된장, 간장 등도 담가 판매한다. 본당 주임 안병선 신부는 “각종 장을 함께 담가 순례객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어르신들이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친교도 다진다”며 “이러한 노동은 순례객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성당운영기금도 마련하는 일석삼조의 즐거움”이라고 전했다. 성지순례 후 잠시 들러 쉴 수 있는 성지 입구 쉼터에서는 누구든 한결같은 마음으로 반겨주는 미리내본당 신자들의 따스한 정성을 느낄 수 있다.


 
▲ 미리내성지 입구 전경.
 

가톨릭신문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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