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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평신도 - 양재현 마르티노

입교 후 수많은 고난·좌절 겪어/ 옥졸의 꾐에 빠져서 도망쳤다가/ 잡혀와 혹독한 형벌 견디다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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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현 마르티노
 

하느님의 종 124위에 오른 순교자들 또한 갈등과 번민을 했던 평신도이자 한 ‘인간’이었다. 양재현(마르티노). 그는 문초와 형벌을 받던 중 옥졸의 꾐에 빠져 집으로 도망쳐 나왔다가 다시 잡혀 들어간 이다.

그는 하느님의 종 명단에 함께 포함된 이정식(요한)의 대자이며, 이정식을 만나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됐고, 이후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경상도 동래에서 좌수라는 직책을 갖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가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된 후로 수많은 고난과 좌절을 겪었던 것이다.

1868년 박해 당시 양재현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포졸에게 체포됐고 관장 앞으로 나아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형벌을 달게 받았다. 관장이 배교를 강요하자 ‘절대로 천주교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며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는 옥에 수감돼 옥졸의 꾐에 빠져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몰래 그곳을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옥졸은 양재현이 집으로 돌아가자 관장에게 가서 ‘죄수가 몰래 도망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했으며 이내 포졸들이 다시 그의 집으로 몰려와, 그는 즉시 체포돼 동래 관아로 압송됐다. 그의 신앙심은 이때부터 다시 굳건해지게 됐다고 전한다.

양재현은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하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후 양재현은 통영에 있는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돼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았으나 흔들리지 않았고, 동래 관아로 다시 끌려와 옥중에서 자신의 대부인 이정식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동래 관장이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자 양재현은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대부 이정식과 함께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 칼을 받았다. 1868년 여름, 당시 그의 나이 41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 역시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됐다.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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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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