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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36) 아버지의 품에서 아들의 눈은 빛나고 있다

충만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 일깨워/ 되찾은 아들의 비유 작품에서 아버지·아들 만나는 장면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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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반라인 아들과 연로한 아버지가 서로 만나고 있다. 아버지는 양손으로 헐벗은 아들의 몸을 감싸주며 안아주고 있다. 지친 표정의 아들은 아버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손을 내밀어 아버지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 배경에는 집의 대문과 푸른 하늘, 그리고 무성한 나무가 표현돼 있다.

이 작품은 루카복음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사랑과 용서가 충만한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알려주셨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회개하고 그분께 다가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자녀로 받아주신다며 이 비유를 들려주셨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루카 15,21-24)


 
▲ 피터 브란들(Peter Brandl, 1668~1735), ‘돌아온 탕자’, 1715년, 유채, 국립미술관, 프라하, 체코.
 
 
작가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가운데서 가장 극적인 장면, 즉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장면만을 부각시켜 표현했다. 아버지의 온화한 얼굴에는 아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어 가슴을 만지는 아들은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의지할 것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가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기둥보다도 든든한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푸른 하늘과 무성한 나무, 따사로운 햇살은 아버지의 품에서 새로 태어난 아들에게 새날이 시작됐음을 알려준다. 아버지의 품에서 아들의 눈은 빛나고 있다.

작은 미술관의 한쪽 벽에 걸려있는 이 작품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먼저 십여 년 전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가정은 삶의 전부셨고 이를 위해서 자신의 온 삶을 희생하셨다. 작품 안의 아들이 뒤늦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달려와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나 역시 이제야 아버지의 큰 사랑을 깨닫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 앞에서 나는 사제로서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었다. 본당에서 사목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지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도움도 청하지 않은 채 눈물만 흘리다가 가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이 작품 속의 아들처럼 힘겨운 모습을 한 채 찾아온다. 그들을 만날 때 나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고 다독거리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열어주고 있는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된다.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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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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