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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41) 아기들의 손을 통해서 전해진 위로는 작은 것이 아니다

나자렛 성가정이 한가한 시간 보내다/ 우리의 가정처럼 인간적인 모습 묘사/ 아기들 해맑은 미소·손길 큰 위안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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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정의 휴식’, 12세기, 채색 목각, 클뤼니 박물관, 파리, 프랑스.
 

 
어느 날 나자렛 성가정이 한자리에 모여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다란 나무 의자에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앉아 있으며 성가족의 보물인 아기 예수는 그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았던 마리아는 성경을 펼치다가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요셉은 재롱부리는 아기와 함께 장난을 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벌거벗은 아기 예수는 요셉의 벗겨진 머리와 수염을 만지며 장난을 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으로 이루어진 성가정은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았던 성가정은 거룩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친다. 성가정이라고 하면 흔히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을 보면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충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가정의 휴식’은 나자렛 성가정도 우리의 가정처럼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루카복음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과 목자들의 경배, 성전 봉헌과 어린 시절의 모습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해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의 유년 시절 모습은 매우 간략하게 묘사돼 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 이 구절을 보면 아기 예수는 우리 가정의 아이들과 똑같이 성장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재롱도 떨고 장난도 치며 자라는 아기들처럼 아기 예수도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내가 아끼는 사진 가운데 한 장은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와 한 어린 소녀가 만나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교황님께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만나던 중에 한 소녀가 다가가 교황님의 양쪽 볼을 작은 손으로 어루만지며 감싸주었다. 사진에는 그때 교황님께서는 할아버지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눈길로 소녀를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던 교황님의 고단한 삶을 한 소녀가 다가가 이해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 것이다. 그 소녀의 작은 손을 통해 전해진 위로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황님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주일마다 우리 성당의 마리아 정원에는 부모를 따라온 아기들의 재롱과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교중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아기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면 스스럼없이 내 품에 안기며 방실방실 웃는 아기들이 있다. 그런 아기들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면 마치 천사가 내게 다가와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서 어떤 아기들은 내 품에 안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내 얼굴을 작은 손으로 만지며 토닥거려 주기도 한다.

아기들이 남기고 떠난 해맑은 미소와 토닥거려 주던 손길은 잠시나마 내 마음속의 이런저런 근심을 잊게 해 주고 큰 위안을 준다. 주일마다 성당에서 만나는 꼬마 친구들의 미소와 손길을 통해서 위의 작품 ‘성가정의 휴식’과 교황님의 사진에 담긴 의미를 조금씩 깨달을 수 있다. 아기들의 작은 손이 하루하루 고단하게 사는 어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정웅모 신부 (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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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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