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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47) “할머니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에요”

노인이 간절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 바쳐/ 고단하고 힘든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변치 않은 노인의 신앙임을 확인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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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야곱 요르단스(Jacob Jordaens, 1593~1678)는 양손을 움켜잡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을 이 작은 작품에서 표현했다. ‘기도하는 노인’(1621년경)은 프라하 미술관의 한쪽 구석에 전시돼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는 인상은 미술관에 있는 어떤 작품보다 진지하고 강렬해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한평생 동안 육체적인 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을 노인이 간절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다. 그가 걸친 남루한 회색 옷은 노인의 한 평생이 가난하면서도 고단했음을 보여준다. 배경의 회색도 옷과 마찬가지로 노인의 삶이 매우 힘들었음을 나타낸다.

참으로 고단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노인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하느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앙임을 그의 눈빛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늘이 맡긴 소명처럼 여기고 우직하면서도 충실하게 산 노인의 머리 주변에는 은은한 후광이 빛나고 있다.


 
▲ 야곱 요르단스(Jacob Jordaens, 1593~1678), ‘기도하는 노인’, 1621년경, 유채, 프라하 미술관, 체코.
 
 
본당에서는 이 작품의 주인공 같은 어르신을 매일 만나게 된다. 평일과 주일 새벽미사가 6시에 봉헌되지만 새벽 5시부터 성당에 와 성모상 앞을 오가며 기도하는 어르신을 자주 만나게 된다. 성당의 문을 열어주면 ‘기도하는 노인’처럼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제단의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마디 굵은 거친 손을 바라보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본당의 신자 가운데 한 분은 연세가 많고 몸이 불편해 매달 봉성체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집안에서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주로 앉아서 생활을 하며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분은 봉성체 예식 중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언제나 입으로만 성체를 받아 모셨다.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으로 성체를 모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양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제 손이 너무 거칠고 못생겼어요. 이 못난 손으로 예수님 몸을 직접 만진다는 것이 송구스러워서요.”

나는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그분의 투박한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할머니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에요. 그러니 이제 그 아름다운 손으로 예수님의 몸을 직접 받아 모시도록 하세요. 예수님은 어떤 사람의 손보다도 할머니의 손을 더 사랑하세요.”

가족들을 위해 한평생 헌신했던 할머니의 거친 손에 비하면 성체를 들고 있는 내 손은 너무나 희어서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으로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이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셨다. 성체를 영한 다음에는 작품에 나오는 노인처럼 간절한 자세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오랫동안 기도를 바치셨다.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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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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