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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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문화산책] <10> 문학(2) 성경이 가르쳐준 인류 구원 방법-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타락의 삶 가운데서 구원자 그리스도를 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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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라 넵스키 수도원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도스토예프스키가 25살 때 쓴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중년의 하급관리 마까르와, 고아 신세로 갖은 고난을 겪으며 부유하고 탐욕스런 지주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하는 가엾은 처녀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편지들로 이뤄진 서간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섬세하고도 간절한 묘사에 감격한 당대의 유명 평론가 벨린스키가 그를 와락 껴안으며 "이 소설을 정말 당신이 썼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러시아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도스토예프스키는 2년 뒤 또 다른 러브스토리 「백야」를, 다음해엔 「첫사랑」을 발표한다. 모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성경과 만남`이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세계 소설문학사의 최고봉`이라는 별칭을 얻지 못하고 연애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 베로프가 그린 도스토예프스키 초상.
 
 
 #자유에 대한 갈망이 빼앗아간 8년 세월
 역사학자 E. H. 카가 쓴 「도스토예프스키 Dostoevsky 1821~1881」란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상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던 독서토론회 `페트라셰프스키`에 가입한 것이 죄가 돼, 총살형 선고를 받아 사형 집행장에 끌려갔다 황제 특사로 감형돼 8년 형을 받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투옥된 것은 1849년, 28살 때로 「첫사랑」을 발표한 직후였다. 당국은 페트라셰프스키 회원들을 사형시킬 의도는 애당초 없었고, 이들처럼 작당해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갖지 말라는 경고를 전 러시아에 하려는 의도였다. 유죄판결을 받은 23명 중 사형수가 된 20명을 집총한 병사들 앞에 서 있게 한 뒤, 황제의 은전으로 갑작스레 감형해 시베리아 유형지로 보낸다는 것이 시나리오였다.
 페트라셰프스키 회원 사건으로 독서토론회 같은 단체를 만들어 자유주의 사상을 흠모했다가는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간다는 사실이 러시아 전역에 퍼졌다. 사람들은 `자유`와 `해방`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됐다. 카는 전기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고 한다.

 "강도에 의해 죽게 될 사람, 이를테면 밤에 숲속에서 그의 목이 잘리게 될 사람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형의 경우, 마지막 희망은 사라지고 명확성만이 남는다. 명확한 선고가 있고 도망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온통 두렵기만 한 고통이 깃든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미치지 않고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처럼 상상할 수 없고 아주 쓸모가 없는 굴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형 선고가 낭독되고 이 고통을 맛보게 한 뒤 `자, 너는 사면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 그렇게 당해본 자는 아마 알 것이다. 이러한 고통, 이러한 공포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말했다. `인간을 그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성경을 손에 쥐고 읽고 또 읽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8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됐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사형집행이 정지된 날부터 4년 동안 발목에 족쇄를 차고 살아가게 된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끌려가는 도중 후 토블스크란 도시에서 6일간 머무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중간 기착지인 이곳에서 인생 전환을 이룬 하나의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은 사형 선고와 집행 직전의 감형보다 더 극적인 일이었다. 2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 데카브리스트 난(12월의 난, 나폴레옹 시대에 자유사상을 접한 귀족출신 청년 장교들이 농노제 폐지와 전제 군주제를 반대하며 일으킨 반란)의 생존자들이 그때까지도 형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부인이 이곳에 와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이 여인들은 동토요 오지인 시베리아로 떠나는 죄수들에게 돈과 음식과 옷가지를 선물하면서 책도 한 권씩 주었다. 바로 성경이었다. 죄수들이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인 성경을 받은 일행은 사흘을 더 여행한 뒤 옴스크의 감옥에서 4년을 살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서토론회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일도, 성경을 숙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노름빚을 갚으려 소설을 쓰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성경만 수십 번 읽는 동안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가 온다. 그 덕에 그는 고통을 통해 영성을 얻고, 하느님께 대한 경배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행해야 구원이 이뤄진다는 그리스도 가르침을 문학적으로 구현하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군복무를 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술주정뱅이의 아내인 마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됐다. 술주정뱅이가 죽자 아들까지 있던 마리아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 자리보전을 한다. 그 무렵 그는 사면 복권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럽 어디를 가나 도박을 했고, 빚을 지면 형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썼다. 빚을 갚으려고 소설을 쓰다 간질이 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망나니 삶의 나날이었다. 사랑하던 여인에게 버림받고 다시 두 여인을 사랑했으나 차이고 만다. 세 여성 모두 처음에는 유명한 소설가라는 말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관심을 기울이다 상습 도박꾼에다 간질병 환자임을 알고는 떠나가는 식이었다.

 생활은 엉망이었지만 노름빚을 갚기 위해 「죽음의 집의 기록」(1862), 「지하 생활자의 수기」(1864), 「죄



가톨릭평화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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